“시대가 멀티플레이어를 원한다” 끝장 승부, 유틸리티 수비수

  • 입력 2008년 4월 22일 09시 26분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두산전은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투였다. 두산이 6회까지 5-0으로 앞서자 SK 김성근 감독은 7회초부터 선수들을 대거 교체하며 다음 경기를 도모했다. 그러나 9회초 2사 후 극적으로 5-5 동점을 만든 후 난감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후반 선수를 대거 교체하다보니 야수를 주 포지션에 두지 못하고 보조 포지션에 투입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익수 이진영은 1루수, 이재원은 3루수 자리에 서 있었다. 이재원은 포수 출신으로 지난해부터 1루수만 연습해왔다. 연장 11회말 무사 1루서 두산 이종욱의 3루수쪽 희생번트 때 3루수 이재원이 번트 타구를 잘 처리해 타자를 아웃시킨 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1루수 이진영이 2루를 지나 3루를 넘보던 주자 이대수를 런다운으로 모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재원이 공을 떨어뜨리는 실책을 범하며 위기상황이 이어졌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무제한 연장…제한된 엔트리…

다양한 포지션 소화 야수 인기

김성근‘전 선수 전 포지션화’ 등

감독들 비상 상황 대비책 부심

○유틸리티 플레이어란?

연장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멀티 플레이어, 즉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를 많이 보유한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삼성 김재걸은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선수 스스로 원해 유틸리티 플레이어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따라 키우기도 한다. 국내 프로야구는 최근 후자의 경우가 많다. 특히 투수에 따라 대타를 내세우고, 타자에 따라 수비수를 바꾸는 등 다양한 작전으로 무장한 스몰볼이 유행하면서 감독들은 이런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선호한다.

SK 김성근 감독이 대표적이다. 거의 ‘전 선수의 전 포지션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성 선동열 감독도 2005년 사령탑을 맡은 뒤 유격수 출신인 3루수 조동찬을 2루수로 훈련시키더니 이제는 외야수로 전향하게 했다. 다른 야수들도 다른 포지션 한개 정도는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20일 대구에서는 LG 외야수 김용우가 경기 시작 전 1루수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김용우의 외야 수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겠다는 차원이다.

○시대는 멀티를 원한다!

올 시즌부터 국내 프로야구도 무제한 연장승부 제도를 도입했다. 연장승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포지션 파괴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19일 SK-두산전은 연장 11회에 그쳤다. 이날의 포지션 파괴를 굳이 무제한 연장승부와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올 시즌 8개 구단 감독은 무제한 연장승부를 머리에 그리면서 선수를 운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LG 김재박 감독은 “예전처럼 투수도 상황에 따라 원포인트 릴리프를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그러다 투수가 고갈될 수 있기 때문에 롱릴리프 한명 정도는 항상 뒤에 남겨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투수도 그렇지만 야수도 마찬가지. 경기 후반 승부처라도 마음대로 대타와 대주자를 투입하기는 어렵다. 이후의 수비를 걱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감독들의 1차적인 전술, 전략은 정규이닝(9회)에 맞춰져 있지만 무제한 연장승부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엔트리는 한정돼 있는데 무제한 연장승부에 돌입하면 야수의 포지션 이동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유비쿼터스’(Ubiquitous)라고 말한다. 과거 선수는 한가지 특출한 능력만 발휘해도 됐지만 이제는 감독이 버튼을 누르면 선수는 언제 어디서든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야구도 ‘유비쿼터스 플레이어’를 원하는 시대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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