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강할수록 법치국가, 민주주의와 행복 비례안해”

  • 입력 2008년 2월 23일 02시 59분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붉은 나치 깃발 아래 ‘위대한 게르만족’의 단결을 주장하던 1930년대 독일 국민. 레닌 동상과 스탈린 동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민주주의의 출발을 환영했던 1990년대 초 옛 소련 시민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겪어 온 지구촌 시민들의 머릿속엔 민족주의는 부정적 이미지, 민주주의는 긍정적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을 뒤집는 경향이 최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최신호(3, 4월)가 보도했다.

▽민족주의의 재발견=21세기의 민족주의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애정이나 공동체 의식 등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다른 국가와 민족을 배척하며 이기적 팽창을 꾀하던 20세기 나치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사회연구단체인 국제사회조사(ISSP)가 34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선진국인 경우가 많았다.

미국 일본 덴마크 등 국민의 자긍심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으며 부패지수는 낮았다. 이들 국가에서는 준법정신도 정착돼 법치(法治)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의 민족주의 성향은 조사 대상 가운데 불가리아, 폴란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은 편에 속했다. 한국의 국민소득과 부패 정도는 이 같은 결과와 비례했고 법치 정도만 중간 수준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

▽행복 앗아가는 민주주의?=민주주의가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력도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표현이나 행동의 자유보다는 경제적 수준의 향상이 행복을 느끼는 중요한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사회문화연구단체인 세계가치조사(WVS)가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각국의 행복지수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지수는 1980년대 0.8(1.0 만점·수치가 클수록 상관관계가 높음)로 매우 밀접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선 이 수치가 0.25로 크게 떨어졌다.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30개국 가운데 28개국이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한 나라라는 사실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한 뒤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몰도바 등 민주화를 이룬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에 비해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인권 및 언론 탄압이 여전한 중국에선 국민의 행복지수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포린폴리시는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나 현대사회에선 경제가 더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최근 한국의 대선과 대만의 총선 결과 민주주의 개혁보다 경제 성장을 선호하는 민심이 두드러진 것도 이 같은 변화를 입증하는 사례라고 이 잡지는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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