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잃어버린 한강, 京江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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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배를 타고 한강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잠실에서 출발하여 양화대교까지 갔다가 다시 잠실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오래전 유람선을 타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밤이어서 강안을 잘 살펴볼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전문가의 설명까지 곁들인 답사다운 답사였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이지만 실용성을 내세운 한강 개발은 한강의 운치를 송두리째 앗아 갔다. 시멘트로 싹싹 바르고 길을 낸 강안엔 도무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고작 두어군데 ‘아! 저기로 접근하면 되겠구나’ 싶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한강은 남쪽으로 올림픽대로와 북쪽으로 강변북로를 양쪽에 끼고 도도하게 홀로 흘러갔다. 여의도는 남쪽에 바짝 붙어 있어 섬처럼 보이지 않았고 밤섬만이 유일하게 자연의 풍광을 내뿜고 있었다.

전통시대에는 서울 부근 한강을 경강이라 했는데 뚝섬 두모포 용산 서강 마포 등은 경강상인의 근거지였다. 경강은 언제라도 서울 사람의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한강은 자연 그대로였다. 뚝섬에는 수영하러 다녔다. 여름이면 사람으로 바글대던 한강대교 부근 백사장의 모래는 희고 고왔다. 맨발로 걷던 모래사장의 감촉은 지금도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밤섬 빼고 옛 명소 모두 사라져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한강 풍경은 더 말해 무엇 하랴. 그가 그린 ‘경교명승첩’에서 현재의 서울에 해당되는 지역을 살펴보자. ‘광진’은 시루떡처럼 층층을 이룬 아차산을 배경으로 언덕 숲 속에는 한옥의 별서(별장)가 즐비하다. 지금은 워커힐호텔 건물군이다. 강변의 섶울타리로 둘러친 작은 초가집은 몇 그루 노송으로 하여 더욱 고즈넉한데 강 위에 떠 있는 돛단배와 대비되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광주로 가는 나루라 하여 광진이라 이름 지었는데 광진교가 옛 자취를 대변하고 있다.

고층 아파트 숲으로 하여 상전벽해로 변해 버린 ‘압구정’은 세조 때의 권신이던 한명회의 정자였다. 갈매기와 사귀며 유유자적한다는 뜻의 정자 이름이 권력욕 때문에 죽은 후 부관참시까지 당한 한명회에게 가당키나 하랴마는 그 뜻만은 좋다. 뒤에 주인은 바뀌었겠지만 18세기까지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것 같다. 동산에 우거진 송림에서 솔바람 그윽하게 부는 듯싶고 산과 물과 백사장이 어울려 아름답고 우아한 정취가 넘친다. 지금은 건너편에 표현된 독서당터인 동산만 옛날과 변함없고 그 위에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아름다운 경승은 정지된 경치만이 아니다. 그 위치에서 보이는 경치에 어우러진 자연의 변화를 함께 감상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팔경 시리즈가 다 그렇거니와 현재에도 지방마다 계속 팔경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멱조돈(木覓朝暾)’이 단연 돋보인다. 나이 65세에 양천현감으로 간 겸재는 초봄 이른 아침에 남산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그 장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강변에 우거진 버드나무는 겨우 초록빛을 머금기 시작했고 남산 중턱에서 숨바꼭질하듯이 나타난 아침 해의 붉은 기운이 강 가운데에 드리워져 있다. 상쾌한 아침 기운과 여명의 잔영이 어우러진 새벽 분위기가 갓 세수한 것처럼 맑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어 시원하게 터진 조망과 부지런한 어부가 일찍이 낚싯배를 노 저어 나오는 한강 풍경이 신선하다.

인공구조물 줄여 친환경 복원을

어찌 이뿐이랴! ‘안현석봉’ ‘공암층탑’ ‘금성평사’ 등 명승첩을 넘기다 보니 구석구석 한강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한강 답사로 잃어버린 한강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니 한강의 명승이 더욱 사무치게 그립다.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수립했다고 한다. 잃어버린 한강, 특히 경강의 옛 모습을 얼마나 되찾을지 모르겠지만 인공 구조물은 가급적 피했으면 싶다. 푸른 자연과 곳곳에 있던 정자 등 전통문화를 되살려 멋진 한강명승을 복원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여 도시생활에 찌든 때를 씻어 내고 자연과 벗하여 마음을 순화하는 장으로 한강-경강이 거듭나길 고대한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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