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미생물…슈퍼결핵균의 한판승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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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결핵대식세포와 T림프구가 결핵균을 죽이지 못할 경우 남은 결핵균은 육아종(붉은 점들) 속에서 잠복하게 된다. 사진 제공 질병관리본부
잠복 결핵
대식세포와 T림프구가 결핵균을 죽이지 못할 경우 남은 결핵균은 육아종(붉은 점들) 속에서 잠복하게 된다. 사진 제공 질병관리본부
《키 0.5∼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허리둘레 0.3∼0.5μm. 잘록한 허리에 가늘고 늘씬한 외모. 세계 인구 3분의 1을 감염시킨 작은 거인 ‘결핵균’이다. 과학자들은 결핵이야말로 ‘인간과 미생물 간에 벌어진 생존 게임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결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도 매년 약 3만6000명이 새로 결핵균에 감염되고 있다. 이는 매일 100명 이상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로, 환자 발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그러나 결핵 보균자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균이 활동을 중단한 채 몸속에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결핵균이 오랫동안 잠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다. 우연히 호흡기를 통해 몸속에 들어간 결핵균은 대부분 강력한 소화효소로 침입균을 죽이는 대식세포에 붙잡힌다. 이 대식세포가 결핵균을 잡고 있는 사이 다른 대식세포와 T림프구가 둘러싸 결핵균을 죽인다.

문제는 결핵균 일부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 결국 더 많은 대식세포와 T림프구가 주위에 모이면서 육아종을 형성하게 된다. 이 육아종에 갇힌 균은 성장과 증식을 하지는 않지만 죽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잠복결핵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결핵균 끈질긴 심리전

일반 결핵이 여러 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 결핵으로 악화되는 이유는 환자가 약을 불규칙하게 먹거나 도중에 복용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결핵 환자들은 최소 6개월 이상 항결핵제를 먹어야 하는데 부작용과 번거로움 때문에 치료를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이들 결핵 치료제는 주로 결핵균의 세포벽 형성을 막거나, 균의 복제를 방해하는 식으로 치료 효과를 낸다. 일반 결핵 환자들도 자연적인 내성을 갖고 있다. 보통 한 가지 약을 1개월 정도 먹으면 대부분 내성이 생긴다.

문제는 약을 불규칙하게 먹으면 이 균이 돌연변이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결국 약을 불규칙하게 먹으면 일반 결핵균을 쉽게 죽일 수 있지만 이들 돌연변이 내성균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결핵 치료약을 3가지 이상 동시에 먹는 이유도 이런 돌연변이로 바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슈퍼균으로 깜짝 변신

항결핵제를 먹어도 효험이 적은 다제내성균은발병하면 치사율이 70%에 이른다. 이들을 슈퍼 결핵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 4명 중 3명은 불성실한 약 복용 때문에, 1명은 외부에서 감염된 경우다.

과학자들은 다제내성균과 일반 결핵균의 차이를 주로 돌연변이에 두고 있다. 다제내성균이 사람 몸속에 침입하는 과정이나 발병하는 과정은 일반 결핵과 거의 같다. 다제내성균의 감염력은 그동안 일반 결핵균보다 약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감염력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다른 항생물질에 비해 활동성이 좋은 퀴놀론계 물질의 화학구조를 일부 바꿔 내성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은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도움말=박승규 국립마산병원장 국제결핵연구센터장)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 전문가들이 본 결핵 치료의 문제점

국내외 결핵 전문가들이 보는 최근 결핵의 현안은 뭘까. 5∼7일 경남 마산시에서 한국화학연구원과 결핵연구원, 노바티스 열대병연구소 소속 의사와 과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다제내성 결핵을 주제로 ‘한-스위스 생명의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김상재 국제항결핵 및 폐질환 연맹 고문=“다제내성 결핵에 걸린 환자 4명 중 3명은 일반 결핵에 감염됐다 바뀐 경우다. 환자 관리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수치심을 갖지 않고 치료받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박태호 한국화학연구원 감염증치료제연구센터장=“결핵은 항생제 복용 기간이 길고 먹는 약의 양이 많다는 게 문제다. 최근 약 개발 방향은 복용 기간과 양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내성이 매우 적은 치료제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

▽토머스 딕 노바티스 열대병연구소 결핵 부문 책임연구원=“치료제 연구에서 퀴놀론 외에 다른 물질을 찾지 못하는 게 문제다. 또 쥐 말고 사람과 병변이 비슷한 동물모델을 찾는 게 급선무다.”

▽류우진 대한결핵협회 결핵연구원장=“내성 문제는 한두 해 일이 아니다. 약 복용 기간을 6개월에서 2개월 정도로 줄이면 환자가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 결핵처럼 다제내성 결핵 환자에 대해서도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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