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무법자’의 韓버전 ‘좋은 놈 나쁜 놈…’ 찍는 김지운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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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을 앞둔 김지운 감독. 홍진환 기자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을 앞둔 김지운 감독. 홍진환 기자
아직 촬영을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드문 일이다. 순 제작비 110억 원에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 출연하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바로 ‘만주 웨스턴’을 표방한 작품 얘기다. 곧 촬영에 들어가 내년에 개봉할 이 거대 프로젝트는 김지운 감독의 끊임없는 도전 욕구에서 시작됐다. 코미디 ‘조용한 가족’ ‘반칙왕’, 호러 ‘장화, 홍련’을 거쳐 누아르 ‘달콤한 인생’, 아직 개봉되지 않은 SF 옴니버스 ‘인류멸망보고서’까지. 장르 순례를 계속하는 그는 광활한 대륙에서 남자들이 쫓고 쫓기는 서부극에 매료됐다.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그를 만났다.

―김지운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드림 캐스팅’이다.

“송강호와 다시 하고 싶었고, 이병헌과는 ‘달콤한 인생’에서 신뢰를 쌓았고, 정우성은 같이 안 해 봤지만 이미 그 ‘미모’에 반했다. 세 배우가 한 화면에 담기는 건 우리 세대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끝내 주는 배우들이 같이 나올 때의 쾌감을 주고 싶었다. 친분으로 된 건 아니고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니 나서 준 게 아닐까.”

―어떤 이야기인가.

“1930년대 조선을 떠난 사람들이 만주에서 살인청부업, 열차털이 등을 하며 사는 이야기다. 정우성이 좋은 놈, 이병헌이 나쁜 놈, 송강호가 이상한 놈이지만 살다 보면 좋은 놈이 나쁜 놈 되고, 나쁜 놈이 이상한 놈 된다. 좋은 놈이 나올 땐 ‘간지(분위기 있는)’ 웨스턴, 이상한 놈이 나오면 코믹 웨스턴, 나쁜 놈이 나오면 잔혹 웨스턴이다.”

―제작비 절감하느라 난리라는데, 110억 원을 짊어진 부담이 크겠다.

“부담 정도가 아니라 후회한다.(웃음) 1930년대를 재현하고 그림의 ‘퀄리티(quality)’를 뽑으려면 이 정도는 필요했다. 대박보다는 투자한 분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게 1차 목표다.”

―상업적인 오락영화라지만 감독이 생각한 주제가 있다면….

“신나게 볼 수 있는 대륙 활극이다. 내 영화에서는 주제가 스토리보다는 정서나 이미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얘기하자면 예전에 국토의 위쪽이 뻥 뚫려 있었을 때 선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다. 만주 벌판을 말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한국인의 모습!”

―매번 다른 장르를 하는 게 피곤하지 않나.

“했던 걸 다시 하면 더 깊게 할 수 있겠지만,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자극이 된다. 다음엔 스릴러도 하고 싶고, 주변에서 멜로를 해보라고 하는데…. 나이 들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설렘’을 잃는 거다. 설렘이 무엇이고, 그게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멜로를 하고 싶다.”

―항상 ‘그림’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데 이번에도 그럴 건가.

“일단 배우들이 그림이 좋지 않나. 송강호가 이병헌 정우성이 폼 나게 총 들고 있는 장면에서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하며 후회하긴 했지만.”(웃음)

―책(‘김지운의 숏컷’)을 보니 10년을 백수로 지냈더라.

“그 시절에 느슨함을 즐기기도 했지만 많은 걸 섭취했다. 좋은 의지를 갖고 있으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언젠가 실현된다. 지금 그런 상황인 분들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더 긴장하게 될 거다.”

솔직히 그는 참 멋지다. ‘쿨’하고 ‘때깔’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얼굴까지 잘생겼다. 그러나 의외로 ‘낯가림이 심하다’는 그는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절대 감독을 못 했을 사람”이라며 “영화가 세상의 쓸모없는 인간 하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보통은 세상의 질서나 속도에 따라가다가 자신을 잃지만, 그는 사회성이 없어서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재능이 있으니까 성공했죠” 하고 시샘 어린 반박을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재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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