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드림 캐스팅’이다.
“송강호와 다시 하고 싶었고, 이병헌과는 ‘달콤한 인생’에서 신뢰를 쌓았고, 정우성은 같이 안 해 봤지만 이미 그 ‘미모’에 반했다. 세 배우가 한 화면에 담기는 건 우리 세대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끝내 주는 배우들이 같이 나올 때의 쾌감을 주고 싶었다. 친분으로 된 건 아니고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니 나서 준 게 아닐까.”
―어떤 이야기인가.
“1930년대 조선을 떠난 사람들이 만주에서 살인청부업, 열차털이 등을 하며 사는 이야기다. 정우성이 좋은 놈, 이병헌이 나쁜 놈, 송강호가 이상한 놈이지만 살다 보면 좋은 놈이 나쁜 놈 되고, 나쁜 놈이 이상한 놈 된다. 좋은 놈이 나올 땐 ‘간지(분위기 있는)’ 웨스턴, 이상한 놈이 나오면 코믹 웨스턴, 나쁜 놈이 나오면 잔혹 웨스턴이다.”
―제작비 절감하느라 난리라는데, 110억 원을 짊어진 부담이 크겠다.
“부담 정도가 아니라 후회한다.(웃음) 1930년대를 재현하고 그림의 ‘퀄리티(quality)’를 뽑으려면 이 정도는 필요했다. 대박보다는 투자한 분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게 1차 목표다.”
―상업적인 오락영화라지만 감독이 생각한 주제가 있다면….
“신나게 볼 수 있는 대륙 활극이다. 내 영화에서는 주제가 스토리보다는 정서나 이미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얘기하자면 예전에 국토의 위쪽이 뻥 뚫려 있었을 때 선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다. 만주 벌판을 말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한국인의 모습!”
―매번 다른 장르를 하는 게 피곤하지 않나.
“했던 걸 다시 하면 더 깊게 할 수 있겠지만,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자극이 된다. 다음엔 스릴러도 하고 싶고, 주변에서 멜로를 해보라고 하는데…. 나이 들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설렘’을 잃는 거다. 설렘이 무엇이고, 그게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멜로를 하고 싶다.”
―항상 ‘그림’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데 이번에도 그럴 건가.
“일단 배우들이 그림이 좋지 않나. 송강호가 이병헌 정우성이 폼 나게 총 들고 있는 장면에서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하며 후회하긴 했지만.”(웃음)
―책(‘김지운의 숏컷’)을 보니 10년을 백수로 지냈더라.
“그 시절에 느슨함을 즐기기도 했지만 많은 걸 섭취했다. 좋은 의지를 갖고 있으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언젠가 실현된다. 지금 그런 상황인 분들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더 긴장하게 될 거다.”
솔직히 그는 참 멋지다. ‘쿨’하고 ‘때깔’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얼굴까지 잘생겼다. 그러나 의외로 ‘낯가림이 심하다’는 그는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절대 감독을 못 했을 사람”이라며 “영화가 세상의 쓸모없는 인간 하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보통은 세상의 질서나 속도에 따라가다가 자신을 잃지만, 그는 사회성이 없어서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재능이 있으니까 성공했죠” 하고 시샘 어린 반박을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재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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