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2>갈림길에 선 美 자동차 기업

  • 입력 2007년 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 있는 GM-UAW 인력개발센터에서 연수에 참가한 GM 근로자들이 교육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GM의 실제 공장과 똑같이 만들어진 이 트레이닝룸에서는 연 3000∼4000명의 GM 현장 직원이 기술훈련 및 장비안전교육을 받는다. 사진 제공 GM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 있는 GM-UAW 인력개발센터에서 연수에 참가한 GM 근로자들이 교육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GM의 실제 공장과 똑같이 만들어진 이 트레이닝룸에서는 연 3000∼4000명의 GM 현장 직원이 기술훈련 및 장비안전교육을 받는다. 사진 제공 GM
《이달 19일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의 제너럴모터스(GM)-전미자동차노조(UAW)의 인력개발센터.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리 호(湖)는 이곳에서 불과 1km 떨어진 디트로이트 도심의 폐허와 같은 풍경의 잔상을 지웠다. 지하주차장에만 900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이 초대형 센터에는 매년 미국 전역에서 3000∼4000명의 GM 노조원이 찾아와 자동차의 품질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 및 현장 안전교육 등을 받는다. GM과 UAW는 2001년 ‘노사상생’을 기원하며 이 건물을 함께 지었다.》

- [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세계가 당신 일자리를 노린다
- [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1>해고 없는 기업 BMW의 비밀

사진 더보기

○근로자 훈련, 노조가 나섰다

센터에 마련된 수십 개의 강의실과 토론실, 4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당 등에서 노사는 기술 트레이닝, 안전교육, 직장 내 관계 향상 프로그램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센터를 안내한 GM노조의 국제업무 담당 마크 스트롤 씨는 기자를 건물 1층에 들어서 있는 GM공장 재현시설로 이끌었다.

“현장 직원들의 작업장 교육을 위해 만든 트레이닝룸입니다. 바닥에 그어진 빨간색, 노란색 안전선부터 건물 3층까지 뻗은 천장 높이에 이르기까지 진짜 현장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어요.”

이곳에서 GM의 노동자들은 보안경을 착용하는 간단한 안전수칙부터 작업장의 로봇을 어떻게 조작해야 더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 어떤 자세로 일할 때 몸에 가장 부담이 적은지 등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요령들을 체득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SPQRC’라는 대원칙 아래 UAW가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SPQRC’는 안전(Safety), 인간(People), 질(Quality), 대응(Responsiveness), 비용(Cost)을 의미한다.

이 센터에는 GM노사의 경험을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산업체 간부들과 노조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센터가 탄생하기까지 GM노사는 ‘1998년 대파업’의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다.

○1998년의 교훈

1998년 6월 GM노조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54일간 장기 파업을 벌였다. 29개 공장 가운데 27곳이 생산을 멈췄고 회사는 20억 달러를 웃도는 손해를 봤다. 노조도 얻은 것이 없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에 따라 요구조건 관철은커녕 월급만 잃었던 것.

“가장 무섭게 깨달은 것은 고객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GM에 입사했던 1978년만 해도 미국산(産)이 아닌 차를 탄다는 것은 미국인에게는 ‘불안한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였죠.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있었어요. 시장엔 이미 쌩쌩 잘 달리면서도 가격까지 싼 일본산, 한국산 자동차가 넘쳐나고 있었으니까요.”(스트롤 씨)

파업 투쟁 실패 후 GM노조에서 강경파는 힘을 잃었고 그 대신 노사 상생을 지향하는 온건파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GM엔 파업이 없다. 올해도 GM은 2008년까지 미 전역의 12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의 직원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노조는 파업이나 분규 없이 회사와 함께 이 고비를 견뎌 나가고 있었다.

GM 노사는 9월 대협상을 앞두고 있다. 회사와 근로자가 임금, 근로조건 등의 전체 틀을 새로 짜는 이 협상은 4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 미국 자동차 기업 빅3인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3사 중 1개사가 협상 타결을 하면 타사도 이 결정을 준용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미국 자동차 기업 전체의 노사협상인 셈이다.

“미국 산업 전반이 남미, 아시아,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회사의 이윤도, 노조의 권익도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번 협상은 대단히 어렵고도 흥미로운 협상이 될 겁니다.” (스트롤 씨)

○살기 위해 배운다

25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주 버펄로 시 외곽의 한 공립고등학교 2층 교실. 운동화를 신고 책가방을 멘 중년의 어른들이 하나둘 씩 모여들었다.

깜깜한 저녁, 달리는 차도 통째로 날릴 듯한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학교에 모인 이들은 버펄로 시 근처의 포드공장, 시립병원, 지역신문 배달소, 우체국 등에서 일하는 노조 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동안 코넬대 노사관계스쿨이 인근 고등학교를 빌려 지역사회 현장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현대의 노동 문제’란 수업을 듣고 있다.

강의는 이날 오전 미국 노동부가 새로 발표한 2006년 노조 동향에 관한 토론으로 시작됐다.

교수가 관련 기사를 읽어 주며 지난해에 비해 노조 조직률이 0.5%포인트 더 떨어져 12%가 됐다고 하자 노조원들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들은 2시간 가깝도록 세계화와 임금 격차, 정부의 정책과 노동자의 권익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포드공장 근로자 지노 씨는 “이런 것들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더는 ‘고상한 이슈’가 아닌 ‘내일의 끼니’와 결부된 이야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마친 ‘학생’들은 코넬대 강사에게서 노사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파업이나 분규가 아닌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법, 협상과정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노사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마음가짐 등을 배우고 오후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토론이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노조원들이 만나 더 나은 노사관계를 모색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실 문을 나서며 우편집배원 스탠 씨가 던진 말이다.

이젠 일자리 ‘남북전쟁’

美기업들 세금 적고 노조없는 남부로 공장이전

미국 노동계는 ‘4분의 1 법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코넬대 노사관계스쿨의 기업교육전문가인 아서 웨턴 씨는 “미국 산업계에서 흔히 쓰는 국가별 임금 계산법인 4분의 1 법칙이 미국 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 하나를 만드는 데 미국에서 10달러를 노동자 임금으로 줘야 한다면, 멕시코에서는 그의 4분의 1인 2.5달러만 주면 되고, 중국에서는 다시 그의 4분의 1인 0.6달러면 된다는 것이 4분의 1 법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법칙보다 더 냉혹하게 돌아간다. 2005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시간당 평균 총임금은 33.6달러인 데 비해 멕시코는 그 10분의 1인 3.2달러, 중국은 1.3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자들이 경쟁해야 하는 것은 멕시코, 중국, 인도 노동자만이 아니다. 미국 북부 지역 업체들은 세금이 싸고 노조 조직이 전무하다시피 한 미국 남부지역으로 속속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기업들의 계산은 냉혹하다. 근로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회사를 남부로든 해외로든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웨턴 씨는 “미국에서 최근 5년간의 노사 협상은 ‘회사가 노동자에게 무엇을 더 줄 것이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사측에 얼마만큼 양보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고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할 경우 퇴직금은 물론 고용 당시 보장되던 의료보험이나 은퇴 자금을 한 푼도 건질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기 몫을 내주고라도 필사적으로 고용 상태가 유지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독일), 파리(프랑스)=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미국)=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사이타마·도쿄(일본)=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