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 가다]<1>네덜란드 ‘가초미터’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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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교통신호·속도 위반 단속기 제조업체인 가초미터는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단속기 시장의 4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회사 직원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암스테르담=박정훈 기자
네덜란드의 교통신호·속도 위반 단속기 제조업체인 가초미터는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단속기 시장의 4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회사 직원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암스테르담=박정훈 기자
영국에서는 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위반하거나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아 단속에 적발되면 흔히 “I'm Gatsoed(단속에 걸렸어)”라고 한다. 네덜란드나 브라질에서도 해당 국가 언어로 같은 표현을 쓴다. 이들 국가에 설치된 과속·신호위반 단속기가 대부분 네덜란드 가초미터사(社)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초미터라는 이름이 ‘교통 단속장비’의 대명사인 셈이다.

이 회사의 단속기는 유럽 지역 운전자들에게 ‘악명’이 높다. 가초미터의 단속기가 광범위하게 설치된 나라의 운전자 사이에는 ‘위반=단속’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말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서쪽으로 15km가량 떨어진 하를럼 지역에 있는 가초미터 본사를 찾았다.

50년 가까이 ‘교통신호·속도위반 측정기’만을 생산해 온 이 회사의 직원은 불과 90명. 하지만 500평 남짓한 작은 공장에서 전 세계 교통단속기의 40% 이상을 생산한다.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2005년에는 연간 매출 2200만 유로(약 260억 원)에 순이익이 300만 유로를 넘는 알짜기업이다.

○ 20%나 비싼 가격에도 높은 경쟁력 자랑

가초미터는 자동차 경주 선수였던 모리스 가초니더스가 1959년 창업했다. 그는 자신이 출전한 한 자동차 경주에서 기록 측정상의 문제로 우승을 하지 못하자 직접 기록 측정기를 만들기 위해 60여 명의 직원을 모아 이 회사를 세웠다. 현재는 창업주의 손자인 ‘3세 경영인’ 티모 가초니더스 사장이 회사 운영을 맡고 있다.

이 회사는 1965년 교통신호와 연계된 센서가 부착된 단속기를 처음 선보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세계 교통단속기 시장을 주도해 오고 있다.

베르트 티헬만 기술 담당이사는 기자를 장비 개발 실험실로 안내했다. 삼각뿔 형태의 자기장(磁氣場) 발생장치가 있는 3평 남짓한 방이었다. 그는 “이 실험실에 가초미터의 기술력이 축약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회사가 선보인 ‘구간속도측정장치’도 이 실험실에서 정밀한 테스트를 거쳐 탄생했다. 이 장치는 차량이 특정 구간에 진입했을 때와 빠져나갔을 때의 평균속도를 측정해 과속 여부를 가려내는 첨단장비로 적발률이 95%를 넘는다. 보통 교통단속기가 위반차량의 60% 정도를 적발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능이다.

가초미터의 제품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 가격이 20% 이상 비싸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데 관심이 큰 각국의 정부들은 이 회사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현재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세계 40개국이 가초미터 제품을 쓰고 있다.○ 과감한 R&D 투자로 기술력 높여

가초미터는 생산제품의 85%를 해외에 수출하지만 각국 현지에 별도의 판매조직을 운영하지 않는다. 방대한 마케팅 조직을 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 경영에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의 호베르트 더 뵈켈라에르 마케팅 담당 이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신제품을 내놓는 데 주력하다 보면 소비자에게서 신뢰가 쌓이게 되고 마케팅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매년 300만 유로 안팎을 R&D에 투자한다. 연간 순이익 규모(350만 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특히 기술이 완성될 때까지 회사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장의 동생인 니키 가초니더스 재무담당 이사는 “다른 회사는 보통 시장에서 수요가 있더라도 1, 2년 투자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개발을 중단하지만 가초미터는 4, 5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기술개발을 지원해 성과물을 낸다”고 설명했다.

R&D 인력의 대다수는 컴퓨터와 전자공학 전공자 출신. 특히 이 가운데 4명은 이 회사에서 20년 이상 제품 개발에만 매달려 온 베테랑 엔지니어들이다.

○ 작고 유연한 조직

가초미터는 △R&D팀 △생산팀 △판매팀 △구매팀 △관리팀 등 5개 팀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체 인력 90명 중 연구개발팀(24명)과 생산팀(30명)이 전체 인력의 6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최소인력으로 꾸려 간다.

회사 측은 “핵심 역량과 관련 없는 분야는 가급적 아웃소싱하지만 협력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생의 경쟁력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조직 운용의 장점 중 하나는 팀 간 벽이 없다는 점. 대다수 직원에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경험하도록 해 조직을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용한다.

실제 가초미터의 사무실 공간은 탁 트인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었고 다른 부서들이 탁 트인 가운데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가초니더스 사장은 “소규모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이해하는 기술자’와, ‘기술을 아는 세일즈맨’을 양성하는 인사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비용 절감의 효과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암스테르담=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3세 경영’ 티모 가초니더스 사장 ▼

“기술만 있으면 마케팅은 저절로”

가초미터사는 전형적인 소규모 가족기업이다. 창업주인 모리스 가초니더스의 아들에 이어 3년 전부터 손자인 티모 가초니더스(33·사진)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공학 분야가 유명한 네덜란드 델프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가초니더스 사장은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이다. 선대(先代)가 이뤄낸 기술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도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1996년 가초미터에 입사해 엔지니어들과 신제품 개발에 참여해 왔다. 지난해 이 회사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신제품 ‘구간속도측정장치’의 개발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사장이 된 뒤에도 기술팀 업무에 참여하며 직접 신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마케팅 노하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기술력만 있으면 마케팅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각국 정부와 자치단체를 상대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성능의 우수성만 입증하면 저절로 마케팅이 이뤄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초미터에는 사장실이 없다. 이 회사는 팀별로 나눠진 공간이 없으며 가초니더스 사장도 직원들 틈에 놓인 작은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소규모 회사에 적합한 ‘탈(脫)권위적 리더십’이 느껴졌다.

“왜 별도의 방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직원들이랑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직원들과 같이 있으면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아이디어를 쉽게 공유할 수 있고 불만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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