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이번엔 ‘무역구제’ 파열음

  • 입력 2006년 12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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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돌파구는… 미국 몬태나 주 빅스카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을 벌이고 있는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왼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6일 오전(현지 시간)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빅스카이=연합뉴스
협상 돌파구는…
미국 몬태나 주 빅스카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을 벌이고 있는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왼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6일 오전(현지 시간)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빅스카이=연합뉴스
미국 몬태나 주 빅스카이에서 열리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5차 협상이 무역구제 문제를 둘러싼 대립으로 무역구제와 의약품, 자동차 등 3개 분과 회의가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 필요성을 다시 강조해 앞으로 ‘뼛조각 파동’으로 불거진 쇠고기 수입 문제가 FTA 협상에서 계속 마찰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무역구제 협상 결렬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는 6일 오전(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우리가 요구한 5가지 반(反)덤핑 관련 개선 요구사항에 대해 미국이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아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의 관심 분야인 의약품과 자동차 분과 회의도 중단시켰다.

이에 대해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요청해 “무역구제 분야는 협상단이 유연하게 대처할 여지가 거의 없는데 한국이 일괄적으로 요구를 수용할지, 말지를 묻는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무역구제는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5일 고작 4, 5시간 논의한 뒤 결렬시킨 것은 지지부진한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한국 측의 전략적 행동이었다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 쇠고기, 다시 도마에

커틀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산 쇠고기 3차 선적분마저 불합격 판정을 받은 데 대해 “한미 FTA가 이해 당사자의 지지를 얻고 의회 비준을 받으려면 한국이 쇠고기 수입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시 폈다.

특히 “교역국가 간에 상업적으로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매우 실망했다”는 등 강도 높은 불만을 나타냈다. 커틀러 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시장을 진짜 개방하기 위해 한국 대표들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고자 한다”고도 말해 미국이 자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의 검역문제에 대해 별도의 채널을 가동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미국육류수출협회 필립 셍 사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불합격 조치는) 한국 농림부가 수입을 허용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명백한 암시”라며 “자유무역 의지와 배치되는 태도”라고 주장했다.

○ 진전도 있었다

무역구제 등 3개 분과를 제외한 다른 분과의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상품 분과에서 양국은 FTA가 체결되면 미국에 수입되는 한국산 물품에 대해 물품 취급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합의했다. 물품 취급 수수료는 수입품 가격의 0.21%가 부과되는 비(非)관세 수수료로 작년 기준으로 한국산 물품에 대해 총 4600만 달러가 부과됐다.

미국은 또 공산품 관세 양허안(개방안) 협상에서 종전에 중기(中期) 관세폐지 품목으로 분류했던 TV 카메라 피아노 등 326개(기타 품목 206개 포함)의 관세폐지 이행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한국도 중기 관세폐지 품목 중 230개(기타 품목 204개)의 이행 시기를 앞당겼다. 이에 따라 양국의 중기 관세폐지 품목은 미국이 1490여 개, 한국은 1530여 개로 줄었다.

○ “아직 시간은 있다”

김종훈 대표는 무역구제 문제와 관련해 “연말까지 뭔가 진전이 있어야 하는 만큼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을 설득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미 의회 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고위급 접촉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남겨뒀다.

커틀러 대표도 “(무역구제 분야에 대해)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일괄적으로 제안을 모두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묻는 형태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빅스카이=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관세등 통해 자국 산업피해 막는 장치

한미 FTA 협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무역구제 제도는 무역에 따른 자국 산업의 피해를 구제해 주는 제도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으로 보장돼 있다.

예컨대 한국의 수출로 미국의 산업이 피해를 보거나 볼 우려가 있을 때 미국은 해당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제도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은 자국의 무역구제 제도를 남용해 한국산 수입품에 반(反)덤핑 관세 등을 부과하는 사례가 많다”며 “우리의 요구는 무역구제 제도의 절차를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무역구제 분과에서 미국에 강경하게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제도가 자동차나 농산물 등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무역 전반에 대해 미국의 수입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현재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17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진행 중이다.

이 중 한국이 턱없이 싼값에 상품을 수출했다고 미국 측이 주장하는 반덤핑 사례가 12건으로 가장 많다.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이 부당하게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미국이 보고 있는 상계관세 관련 사례는 1건. 나머지 4건에 대해서는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가 함께 부과돼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한-미 의원들 너무 다르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5차 협상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3일(현지 시간) 맥스 보커스 미국 상원의원은 양국 대표와 주미 한국대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협상장 부근 식당으로 초청했다. 단순히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취재진이 모여든 가운데 보커스 의원은 미국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직접 썰어 입에 넣으며 미리 연습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되풀이했다.

누가 봐도 한국에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왔다는 이유로 당국이 검역 불합격 판정을 내린 데 대한 ‘시위’였다.

보커스 의원은 몬태나 주 출신으로 이번 FTA 협상을 몬태나로 유치한 주역이다. 이날 이벤트를 지켜본 한국 협상단은 “자국 협상단에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뼈 있는 쇠고기까지)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FTA에 대한 미국 의회의 비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의회가 쇠고기 문제 때문에 FTA 협상 비준을 거부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국 협상단이 자국 의회의 존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미국 의회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사정은 상당히 다르다.

5차 협상을 앞두고 협상단이 미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미 FTA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논의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여당 중진의원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천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사실상 FTA 반대를 선언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한국 측 협상단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뭐라고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고개를 젓다가 “(천 의원 발언 같은 것이 나오면) 솔직히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출발 전에 만난 한 정부 인사는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걱정했다. 자칫하면 표를 의식한 몇몇 대선 주자들이 한미 FTA에 대해 ‘정치적으로’ 접근해 반대한다는 주장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을 국익 차원에서 냉정하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이끌지 고민하는 정치인이 아쉽다”고 말했다.

빅스카이=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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