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한 사탕…어린것에 열광하는 ‘캔디코드’ 사회

  • 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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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군것질로 취급받기 싫다!” 광고, TV, 음악, 패션 등 문화 전반에서 사탕이 군것질거리가 아닌 이미지 연출의 소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근엄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커다란 막대사탕을 빨고 있는 디지털 TV 광고, 발랄한 노래를 담은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 서영은의 앨범 재킷, 최근 종영된 MBC 드라마 ‘궁’의 포스터. 사진 제공 JPIP, 소니비엠지, 에이트픽스
“더는 군것질로 취급받기 싫다!” 광고, TV, 음악, 패션 등 문화 전반에서 사탕이 군것질거리가 아닌 이미지 연출의 소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근엄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커다란 막대사탕을 빨고 있는 디지털 TV 광고, 발랄한 노래를 담은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 서영은의 앨범 재킷, 최근 종영된 MBC 드라마 ‘궁’의 포스터. 사진 제공 JPIP, 소니비엠지, 에이트픽스
가라앉은 눈두덩, 노려보는 시선,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금방이라도 “예끼 이놈” 하고 호통 칠 듯한 할아버지 얼굴. 한 디지털TV 광고의 첫 장면이다. 그러나 점점 멀어지는 카메라가 그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는다. 깡통 로봇 만화 티셔츠를 입은 할아버지. 그는 뱅글뱅글 소용돌이 모양이 그려진 커다란 막대사탕을 빨며 TV를 보고 있다. 이 광고를 제작한 광고대행사 JPIP의 이병수(41) 국장은 “아이가 TV를 오랫동안 보다가 늙어 할아버지가 된 것을 코믹하게 나타낸 것”이라며 ‘동심’을 상징하는 소도구로 막대사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최근 6집 앨범을 발표한 가수 서영은도 앨범 재킷 전면에 커다란 막대사탕을 물고 있다. 그동안 구슬픈 발라드, 재즈 가수로 알려진 그녀는 이번엔 발랄한 신곡 ‘웃는 거야’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서영은의 소속사는 “알록달록하고 상큼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사탕을 액세서리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현재 ‘웃는 거야’는 각종 가요차트 5위권에 진입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 2006년 문화 트렌드는 ‘캔디 코드’

2006년 봄. ‘충치의 주범’ 사탕의 이미지가 대반전하고 있다. 광고, TV, 음악, 패션 등 대중문화 각 부문에서 사탕이 군것질거리가 아닌 ‘액세서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 특히 소용돌이 무늬의 커다란 막대사탕은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연예인들의 트렌드 상품이 됐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종영된 MBC 드라마 ‘궁’의 포스터. 재기발랄한 드라마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제작진은 주연배우 윤은혜와 주지훈에게 막대사탕을 쥐여 주었다.

최근 발표된 가수 임정희의 신곡 ‘사랑아 가지 마’ 뮤직비디오는 ‘사이보그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슬픈 내용임에도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신인 배우 우리(15)가 사탕을 입에 물고 등장했다.

올봄의 패션 트렌드로 꼽히는 색상군(群)인 핑크 노랑 빨강 등 이른바 ‘캔디 컬러’도 캔디 코드 확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캔디 컬러’는 본래의 핑크 노랑 빨강보다 강렬하지 않고, 파스텔 톤에 가까우면서 투명감이 강조된다.

○ 막대사탕, 동심 젊음 친숙함 상징

광고대행사 대홍기획의 브랜드마케팅 연구소 최숙희(34) 부장은 “막대사탕의 유행은 신세대의 비(非)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라며 “목에 건 MP3 플레이어를 통해 ‘나는 디지털 문화 향유자’임을 나타내듯 막대사탕은 동심, 젊음, 친숙함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라고 말했다. ‘캔디 코드’의 유행은 일종의 퇴행성 놀이 문화의 상징이라는 것. 이는 TV프로그램 등에서 인기를 모은 동안(童顔)선발대회, 동안 연예인, 어려 보이는 화장법 등 동안에 열광하는 사회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막대사탕에 귀여운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일리스트 김희원(31) 씨는 “이효리로 대표되는 강렬한 섹시함에 식상한 사람들이 소녀적인 순수함이나 발랄함에서 섹시함을 찾는다”며 “캔디 코드는 결국 또 다른 섹시미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황상민(심리학) 연세대 교수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사회에서는 ‘나이 드는 것은 나쁘고 구식’이라는 가치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어려 보이는 것이 절대 선의 가치로 수용되기 시작했다”며 젊어지는 것을 넘어 어려지고 싶다는 극단적 욕구의 한 표출이 ‘캔디 코드’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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