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황제’ 절대미각 흔들

  •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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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황제’로 불리는 로버트 파커(사진) 씨의 독재 체제가 도전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비평가 파커 씨는 프랑스 생테밀리옹 ‘샤토 파비’의 2004년산 와인을 놓고 영국 비평가들과 한판 붙었다.

파커 씨가 ‘대단하다(brilliant)’고 평가한 이 와인을 영국의 잰시스 로빈슨 씨는 ‘형편없다(ridiculous)’고 깎아내렸고 클라이브 코츠 씨는 “이게 좋다는 사람은 혓바닥을 이식할 필요가 있다”고 비꼬았다.

지난해 상영된 와인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비노(Mondovino)’는 파커 씨를 ‘버거 킹’에 비유했다. 와인에서 다양성과 뉘앙스를 몰아낸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엘린 매코이 씨는 ‘와인의 황제’라는 책에서 ‘한 사람의 입맛이 지배하는 현상’에 우려를 표시했다.

가장 신랄한 공격은 영국 최고의 와인비평가 휴 존슨 씨로부터 나왔다. 그는 “제국의 패권은 워싱턴에 있고 맛의 독재자는 볼티모어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파커 씨가 워싱턴 인근 볼티모어 지역에 사는 것을 빗댄 야유다.

파커 씨는 1982년 보르도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를 높이 평가한 최초의 인물.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빈티지가 산도가 낮고 수명이 짧은 것으로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와인 시장은 이 보르도 빈티지의 가격을 어느 지역 빈티지보다 높게 쳐 줬다.

이 전설적인 사건 이후 그는 약 25년간 최고 비평가로 군림했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100점 척도의 평가기준을 최초로 마련한 사람도 파커 씨다.

그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준 와인은 너무 비싸고, 80점 이하를 준 와인은 덤핑으로 팔린다.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그의 평가가 나오기 전에는 가격 공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미묘함보다는 강력함을 선호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와인 생산자들은 심지어 그의 입맛에 맞게 포도 재배와 양조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파커화된’ 와인이 범람하면서 와인의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

파커 씨는 영국 비평가들의 비판을 ‘계급 갈등’으로 본다. 메도크와 같은 귀족 와인의 편에 선 그들이 생테밀리옹 포므롤 등 ‘촌뜨기’ 후발 주자를 높이 평가하는 파커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강력함을 높이 평가하지만 자신은 이런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또 ‘캘리포니아 입맛’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그의 취향은 프랑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쪽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트산 네비올로 품종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좋아하고 알사스와 루아르의 화이트와인을 사랑한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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