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대호]문제는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다

동아일보 입력 2015-05-28 03:00수정 2015-05-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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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모-고용형태별 임금격차… 상위 10% 소득점유율 세계 최악
부실한 사다리, 수많은 독점도 청년세대의 희망 의욕 꺾어
악질 자본주의, 저질 민주주의
혁신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유지-강화 역주행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소련, 동유럽, 중국에서 격변이 일어나던 1990년을 전후하여 내 화두는 사회주의 몰락 이유였다. 자동차 전용 도로의 막히는 구간이면 나타나 도로 한가운데서 오징어, 뻥튀기를 파는 장사꾼들이 풀어주었다. 소비자의 요구(needs)가 있을 법한 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돈을 버는 사람을 수없이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사회주의 지령경제가 당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다 아는 얘기지만 사회주의는 당 간부의 부정부패, 노쇠, 세대교체 때문에 망한 게 아니다. 국방부문 등에 사회 잉여를 너무 많이 투여해서도 아니다.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의 근원인 인간의 창의, 열정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해서 망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과거 사회주의처럼 청년 세대와 변화, 혁신을 주도할 도전자들을 너무 옥죄고 누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일자리 표준=정상으로 간주되는 100만 공무원의 근로조건부터가 그렇다. 기준이 ‘상시 근로자 100인 이상 중견기업 사무관리직의 보수’다. 유수의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 등이 주력이다. 원래 생산성 자체가 높거나, 독과점이거나, 국가규제(진입장벽)에 의해 손쉽게 돈을 버는 산업이다. 대체로 강력한 노조가 있는데, 산업 차원의 근로조건의 표준(공정 노동시장 가격) 개념이 없어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이 세계 최고다. 공무원의 보수 기준부터 뛰는 놈 위의 나는 놈(300만여 명) 등에 업힌 격이다. 임금 자동상승 장치(호봉제), 확실한 정년, 연금은 별도다. 청년들의 로망이다. 개인적으로야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재앙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하나 가지고도 생난리다. 누가 수구 보수고, 무엇이 개혁 진보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진보, 보수, 공공이 당연시하는 고용임금 패러다임은 엄청난 비정상이다. 북유럽 같으면 공공부문에 200만 명을 품을 재정으로 100만 명을 품는다. 800만 명이 먹을 파이를 400만 명이 먹는다. 부문, 산업, 기업규모, 고용형태별 임금 격차(절벽)와 상위 10%(400만 명)의 소득 점유율이 세계 최악인 이유다. 청년들의 결혼, 출산은 정상(正常)적 삶의 궤도에 올라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북한산 정상(頂上)만큼이나 오르기 힘드니 출산율이 정상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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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표준 못지않게 부실한 사다리와 국가규제 등에 기댄 수많은 독점 영역도 청년과 비기득권의 숨통을 죈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따르면 자본 없는 사람의 사다리 격인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 100위,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 107위, 대출의 용이성 120위다. 정치와 행정 수준을 보여주는 법체계의 효율성(규제개선 측면) 113위, 정책 결정의 투명성 133위다. 이 수치들은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송파 세 모녀, 부천 세 자매의 비극은 복지 결핍 문제이기 이전에 일자리와 희망, 관계망, 자존감 결핍 문제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악질 자본주의와 저질 민주주의를 오히려 유지, 강화하려 한다. 임금피크제와 연계하지 않은 정년연장법이 그 증거다. 보편적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 강화는 뒤로하고 노조 요구대로 정리해고 요건 강화에 매달린 것도 그렇다. 정치적 갈등 지점도 사회주의, 아니 조선 양반관료 체제를 빼쏜 노동, 공공, 금융, 교육, 국방, 정치시스템 개혁이 아니다. 오직 상대의 부도덕, 막말 시비와 기업 활동 규제와 복지 결핍 시비다. 정치·정당 혁신의 요체이자 집권의 왕도는 망국적인 모순, 부조리를 정확히 지적하고 이를 혁파할 비전, 용기,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차기 총선, 대선에서 기회를 주면 이전 국회나 정부와 어떻게 다르게 할지를 설득력 있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치 혁신 판에 공천, 젊은 인물, 계파, 기득권은 거론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대 정부에 대한 성찰과 미래 비전은 없다. 사회주의 몰락과 중국의 비상으로부터 배운 게 없어 보인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공천, 인물 백번 혁신해도 별무신통이다. 지금 정치·정당 혁신의 핵심은 청년과 비기득권에게 최악의 체제를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할 비전과 실력이다. 혁신은 근본을 틀어쥐어야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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