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했다 재도입 사전청약제 “피해 속출” 34개월만에 또 폐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5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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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수요 분산” 文정부때 재도입… 본청약 지연 일쑤 분양자들 고통
기존 사전청약, 6개월 넘게 지연땐
계약금-중도금 납부도 늦출 방침
일부선 “이미 본 피해는 어떡하나”

본청약보다 통상 2년 앞서 미리 청약을 받는 사전청약 제도가 전면 폐지된다. 재도입 2년 10개월 만이다. 본청약 일정이 예상보다 길게는 3년 이상 지연되면서 사전청약 분양자들의 이사 및 자금 마련 계획이 틀어지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지연 사례가 속출하는데도 정부의 정책 전환이 늦어지면서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 국토부 “앞으로 사전청약 고려하지 않을 것”

14일 국토교통부는 올해 사전청약을 진행하기로 했던 물량 1만 채에 대해 바로 본청약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공급하는 물량에도 사전청약은 진행하지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약 수요가 높아지더라도 사전청약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근거가 되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사전청약은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도 본청약 지연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운영이 중단됐는데,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1년 7월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재도입됐다.

정부가 사전청약을 폐지하기로 한 건 상당수 단지의 본청약이 기약 없이 늦어지며 피해가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사전청약으로 공급해 본청약을 앞둔 곳은 86개 단지, 4만6000채 규모다. 이들 상당수가 지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올해 9, 10월 본청약을 앞뒀던 단지 8곳 중 7곳은 이미 지연이 확정됐다. △남양주왕숙2 A1·3, B2 △과천주암 C1·2 △하남교산 A2 △구리갈매역세권 A1 등으로 총 5667채 규모다. 남은 서울 동작구 수방사 군부지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오염토가 발견돼 본청약 지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지연 사실을 본청약 예정일 1, 2개월 전에야 알려 사전청약 당첨자의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또 시기가 지연되면서 분양가가 오르는 일도 잦다 보니 사전청약 당첨자 2명 중 1명(54%)만 본청약 계약을 했다. 그만큼 ‘중도 포기’가 많은 것이다.

● 6개월 이상 지연되면 계약금-중도금 늦게 내도록

정부는 이미 사전청약이 진행된 단지에 대해서는 지연 여부 통보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토부는 이들 단지의 본청약 지연 여부를 확정해 최소 본청약 4∼5개월 전에 지연 여부, 사유, 예상 지연 기간 등을 당첨자에게 알릴 계획이다.

또 6개월 이상 본청약이 지연될 경우 본청약 때 계약금을 전체의 5%만 내도록 할 방침이다. 중도금 납부 횟수도 2회에서 1회로 조정한다. 상대적으로 이자가 낮은 중도금 집단 대출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본청약 지연으로 자금 계획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납부 시기를 늦춰서 자금 마련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본청약 지연을 겪고 있는 사전청약 당첨자 사이에서는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리갈매역세권 사전청약 당첨자 김모 씨(33)는 “본청약이 지연되면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은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당첨자는 “계약금을 내려고 전세보증금을 빼고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며 “이미 발생한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토로했다.

사전청약 자체가 애초에 무리한 제도였다는 시각도 있다. 사전청약은 착공 직후 진행하는 본청약과 달리 지구 내 도로, 공원 등 밑그림을 담은 지구단위계획만 나오면 진행된다.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심의나 원주민 이주 등에 문제가 생기면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 수요를 달래기 위한 제도라지만 제도적 틀을 무리하게 흔들어서는 안 됐다”며 “공사비 인상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곳이 많은 만큼 이미 사전청약을 진행한 단지는 세심하게 관리해 최대한 지연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사전청약제 폐지#지연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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