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찰, 대학 反戰시위 상징 ‘해밀턴홀’ 진압작전… 50여명 체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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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전 ‘베트남 반전 운동’ 핵심 장소
이번엔 反중동전쟁 진원지로 부상
‘반정부 시위’ 확산 가능성… 긴장 고조
백악관 “불법점거 안돼, 평화시위를”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경 미국 뉴욕경찰이 컬럼비아대 캠퍼스로 진입한 뒤 사다리차를 타고 해밀턴홀로 들어가고 있다(위쪽 
사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는 이날 새벽 해밀턴홀을 기습 점거했다. 대학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은 진압 5분여 만에 학생 50여
 명을 연행했다(아래쪽 사진). 뉴욕=AP 뉴시스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경 미국 뉴욕경찰이 컬럼비아대 캠퍼스로 진입한 뒤 사다리차를 타고 해밀턴홀로 들어가고 있다(위쪽 사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는 이날 새벽 해밀턴홀을 기습 점거했다. 대학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은 진압 5분여 만에 학생 50여 명을 연행했다(아래쪽 사진). 뉴욕=AP 뉴시스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경. 낮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암스테르담애비뉴에 집결해 있던 경찰이 맞은편 컬럼비아대로 진입을 시작했다. 이날 새벽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미 대학 시위의 상징’으로 불리는 해밀턴홀을 기습적으로 점거하자 대학 측이 경찰에 진압을 요청했다. 1968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해밀턴홀 점거 시위를 진압한 사건이 벌어진 지 56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최근 전 세계 대학가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 시위의 진원지로 불렸던 컬럼비아대에 결국 공권력이 개입했다. 일단 해밀턴홀 점거는 풀렸지만, 반전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할 권리와 학교 및 도시를 안전하게 지킬 권리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시위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 1968년 ‘그날’을 불러오다

1968년 4월 24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해밀턴홀에서 베트남전쟁 등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대. 6일 뒤인 30일 경찰이 이곳에 진입해 700여 명을 체포하는 진압 사건이 벌어졌다. 뉴욕=AP 뉴시스
1968년 4월 24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해밀턴홀에서 베트남전쟁 등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대. 6일 뒤인 30일 경찰이 이곳에 진입해 700여 명을 체포하는 진압 사건이 벌어졌다. 뉴욕=AP 뉴시스
이날 경찰이 2층 창문 등을 통해 해밀턴홀 진입을 시도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 안팎에 밀집해 있던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 “학생들을 풀어줘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컬럼비아대 학보 ‘컬럼비아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경찰은 진입 약 5분 만에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경찰 측은 “해밀턴홀에서 약 50명의 학생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마침 이날은 1968년 해밀턴홀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체포된 지 딱 56년이 된 날이었다. 당시 시위 학생 700여 명이 대거 경찰에 끌려간 광경은 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시위 학생들이 이날 새벽 해밀턴홀을 점거한 의도도 이를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시선이 컬럼비아대로 쏠린 상황에서 학생운동의 ‘전설적 사건’을 불러일으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전날 밤 몇몇 시위대가 홀에 들어간 뒤 이날 새벽에 문을 열어 학생들이 대거 진입했다고 한다. 1968년 시위에 참여했던 마크 나이슨 포덤대 역사학과 교수는 NBC방송에 “(현재 양상이) 당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답했던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은 해밀턴홀이 점거되자 경찰에 진압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보냈다. 또한 대학 졸업식(15일) 이후인 17일까지 캠퍼스에 상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은 또 시위에 불참한 학생들에게 “학교 밖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경고문도 보냈다.

●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커질 수도”

해밀턴홀 시위대는 진압됐지만, 사태의 불길은 더 크게 번질 수도 있다. 당초 시위는 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강경 진압이 이어지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컬럼비아대 진압은 시위의 양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며 “2020년 전국에서 들끓었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처럼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치권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 등은 이날 “학생들의 건물 점거는 불법 행위로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컬럼비아대의 존 맥워터 언어학 교수도 NYT 기고문에서 “지적인 항의로 시작된 시위가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폭력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학대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학생을 비롯한 미 청년층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뉴욕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만난 파두모 오스만 씨(28)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우리 세금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을 지원하면서 정작 미국 내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4년 전에 바이든 대통령을 뽑았지만 올해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경찰#해밀턴홀#진압작전#대학 반전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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