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일 2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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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매우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한 집단이 있다. 서로 친밀하고 의지하고 단결심도 강하다. 매우 강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챙기는 따뜻한 리더도 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일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소명의식도 가지고 있다.

어떤 집단처럼 보이나? 아마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요건을 두루 갖춘 완벽한 집단의 느낌? 하나하나는 이상적인 조직이 갖춰야 할 당연한 덕목들로 보이지만, 그 모두가 합쳐졌을 때 너무나도 멍청한 잘못을 저지르는 완벽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완벽한 최정예 리더 집단이 너무나도 멍청한 판단과 선택으로 망가지는 과정을 집단사고(groupthinking)로 설명한다. 그 연구는 미국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이 실패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케네디 정부는 젊고 유능한 인물들로 가득했다. 명문가 출신에 명문대학을 나왔고 스스로 혁신적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도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법무부 장관에 자신의 동생을 임명할 정도로 그들만의 단결심과 응집력은 대단했다. 그 당시 소련과 손을 잡고 미국을 위협하는 쿠바를 그대로 둘 수 없었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안전을 위해 쿠바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쿠바를 침공해서 그 악의 우두머리인 카스트로를 제거해야만 한다는 목표는 너무나도 절실했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엄청나게 멍청한 작전계획을 짜서 완벽하게 실패한다. 왜? 자신들이 이기는 게 너무 당연하니까. 평생을 스스로 잘나서 살아왔고, 실패해 본 경험도 별로 없고, 항상 강한 힘을 가져왔고, 늘 자신이 도덕적·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었고, 적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당이니, 이건 질래야 질 수 없다는 느낌이 충만했을 것이다. 만약 전지전능하신 신이 있다면, 착한 편(신의 편)인 자신들이 지게 놔둘 리가 없다는 권선징악의 믿음까지. 그러니 걱정도 굳이 없고 고민도 별로 안 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질 수도 있다고 그 걱정과 근거를 얘기하면, 그 사람은 바로 의심받았을 것이다. 너 간첩이냐고. 너는 우리가 지면 좋겠냐고. 그럼 쿠바를 그대로 두자고? 라고. 그래서 점점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두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실제 이 과정은 쿠바 침공 당시의 기록물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다.

집단사고는 종종 일어났다. 종교와 관련된 성스러운 갈등, 전쟁과 테러, 비슷한 멍청한 결정 뒤에 항상 존재해왔다. 스스로가 뛰어나고 우월하고 정의의 편이니 이번에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단사고의 최적 조건이 된다. 그래서 요즘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자기만의 성전을 치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집단사고를 막는 방법은 바로 내부의 적(devil’s advocate)을 ‘일부러’ 두는 것이다. 그 집단 안에서 언제나 반대 의견과 다른 생각을 얘기하는 존재를 일부러 만들고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용기와 포용이 특히 잘난 집단과 리더에겐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내부의 적#집단사고#실패하는 과정#반대 의견#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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