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발톱 개수’로 왕의 권위 가늠… 비 내려주는 ‘水神’ 상징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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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용의 해’… 전통문화 속의 龍
‘발톱 4개’ 곤룡포 입다 세종때 ‘5개’… 명 황제만 가능했던 ‘오조룡복’ 착용
‘십이지신’ 중 유일한 상상 속 동물
민속박물관, ‘龍, 날아오르다’ 특별전

구름 속에서 승천하는 용을 그린 조선 시대 그림.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도 간다’는 속담이 있듯 우리 문화에서 용은 구름과 함께 비를 뿌리는 수신(水神)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구름 속에서 승천하는 용을 그린 조선 시대 그림.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도 간다’는 속담이 있듯 우리 문화에서 용은 구름과 함께 비를 뿌리는 수신(水神)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에 내가 사조룡복(四爪龍服)을 입다가 후에 중국의 친왕(親王)들이 오조룡복(五爪龍服)을 입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 역시 그런 옷을 입고 사신을 대했더니 그 후로는 황제께서 오조룡복을 하사했다.”(‘세종실록’에서)

세종은 처음으로 다섯 개 발톱이 수놓아진 곤룡포를 입은 조선의 왕이다. 그가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에게 오조룡복을 요구하기 전까지 명은 조선의 왕에게 네 개 발톱이 수놓아진 사조룡복을 내렸다. 이는 956년 고려 때부터 중국으로부터 백관의 복식을 내려받은 관례에 따른 것으로,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복은 오직 중국 황제만 입을 수 있었다. 용의 발톱 수가 한중 외교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조선 말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 천장엔 일곱 개 발톱을 가진 ‘칠조룡’이 그려졌다. 용의 발톱 수를 통해 조선의 건재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전통 시대 용은 그 발톱까지 당대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영물(靈物)이었다.

십이지신 중 용신을 형상화한 ‘십이지신도―진신’(1977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십이지신 중 용신을 형상화한 ‘십이지신도―진신’(1977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24년 용의 해인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전통문화 속 용을 살펴봤다.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다섯 번째 동물인 용은 열두 띠 동물 중 유일한 상상 속 동물이다. 시간 진시(辰時)는 오전 7∼9시에 해당하며, 달로는 음력 3월이 진월(辰月)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현실의 다양한 동물들을 결합한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중국 위나라 장읍이 편찬한 자전(字典) ‘광아(廣雅)’엔 용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용의 기원에 대해서 특정 설이 정착돼 있진 않지만,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악어가 용의 기원이었을 것”으로 추론했다. 중국 허난(河南)성의 한 신석기 무덤에서 출토된 ‘용’ 유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무덤에선 유골 양쪽에 조개껍데기를 땅에 가득 박아 ‘호랑이’와 ‘용’을 형상화한 흔적이 나왔는데, 이때 용의 모습이 다리 달린 악어와 유사하다는 것. 정 학예연구관은 “중생대 한반도에 대형 악어가 살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용의 등에 돌기가 나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점 등 실존하는 악어를 바탕으로 상상 속 동물인 용의 형상이 빚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용 문양을 비롯해 고대 용 문양이 뱀보다는 다리 달린 악어를 닮았다는 점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18세기 ‘백자청화운룡무늬 항아리’. 최고 권위를 상징했던 용 문양은 조선 후기 들어 양반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문양으로 도자기와 그림 등에 널리 그려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8세기 ‘백자청화운룡무늬 항아리’. 최고 권위를 상징했던 용 문양은 조선 후기 들어 양반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문양으로 도자기와 그림 등에 널리 그려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우리 민속 문화에 뿌리내린 용은 비를 내려주는 ‘수신(水神)’을 뜻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일 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용(龍)’에 따르면 순우리말로 용을 의미하는 ‘미르’는 ‘물’에서 비롯됐다. 옛 선조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내리길 기원했다. ‘삼국유사’엔 “용의 그림을 그려 넣고 비를 빌었다”는 기록이, ‘고려사’엔 “흙으로 용상을 만들어 놓고 무당들에게 비를 빌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반 민가에선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 지형지물에서 기우제를 지내거나 다양한 주술적인 방법으로 비를 빌었다. 이는 전국에 고시된 지명(약 10만 개)에서 십이지 관련 지명 가운데 ‘용’자가 들어간 지명이 1261개로 가장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갑진년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문화 속 용에 얽힌 상징과 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 ‘용(龍), 날아오르다’를 내년 3월 3일까지 선보인다. 무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민속박물관#특별전#용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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