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대담하고 교묘해지는 기술 유출..."양형기준 강화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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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6월 22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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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범죄가 날이 갈수록 교묘하면서 대담해지고 있다.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유출될 경우, 금전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도 좌우할 기술을 빼돌려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술유출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고 있다. 양형기준을 강화해 해당 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 전경.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 전경.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통째로 복제 시도…업계 핵심 인력 200여 명도 빼가

지난 12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토대로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 한 A(65)씨를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A 씨는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SK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 사장 후보군으로 언급됐던 인물이다. A 씨의 범죄에 함께 가담해 불구속 기소된 이들도 총 6명(삼성전자 출신 3명, 삼성 계열사 출신 2명, 삼성전자 협력업체 출신 1명)으로, 국가 핵심 기술을 조직적으로 빼돌리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A씨는 삼성전자 상무와 SK하이닉스 부사장직을 거친 후 지난 2015년, 싱가포르에 반도체 제조업체 B를 설립했다. 이후 2018년 대만 생산·판매업체로부터 8조 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약정을 체결했으며, 2020년에는 합작법인 C를 만들어 약 4,600억 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A씨는 해당 투자금을 앞세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 200여명을 B사와 C사에 각각 영입했다. 기존 연봉의 두 배 이상을 제시하고 가족이 이주하면, 자녀 국제학교 비용 등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이직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확보한 인력과 빼돌린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시안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하려고 시도한 점이다. 해당 복제 공장의 부지는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에서 불과 1.5km 거리에 있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국가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 반도체 클린룸을 불순물이 거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기술)와 공정 배치도(핵심 8대 공정 배치와 면적 등의 정보), 공장 설계도면 등을 부정하게 입수해 삼상전자 반도체 공장 복제를 시도했다. 이로 인한 삼성전자의 피해액은 최소 3,000억 원에서 최대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클린룸 내부. 출처=삼성전자
클린룸 내부. 출처=삼성전자

8조 원 규모의 약정 투자 불발로 복제 공장 건립은 무산됐지만, A씨가 4,600억 원의 투자금으로 만든 반도체 제조 공장의 연구개발동이 지난해 완공됐다. 이곳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시제품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담하고 교묘해지는 기술유출…양형기준 상향으로 근절해야


이처럼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대담해지고 더욱 교묘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지난 2012년경에는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디스플레이 패널 검사장비업체 오보텍코리아 직원들이 수차례 삼성과 LG의 아몰레드(AM-OLED,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핵심 제작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당시 검찰수사 결과, 해당 직원들은 광학검사장비 점검을 위해 삼성과 LG 생산공장을 출입하면서 신용카드형 USB 등을 몰래 들여와 아몰레드 패널 공정별 회로도의 실물 사진 등 핵심기술 자료를 저장한 뒤 벨트 버클 뒤쪽에 붙이거나, 신발 아래에 숨기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2017년 1월경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OLED 증착 기술을 BOE사의 자회사(시네바)로 빼돌리려 한 연구원이 경찰에 적발됐으며, 2018년경에는 OLED 패널 분야 삼성전자 수석(부장급) 연구원 3명이 비밀리에 BOE사로 옮겨간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주요국가와 달리 관대한 선행 판결로 인해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수율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반도체 업계 거물급 인사가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려 삼성전자 공장을 통째로 복제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 충격을 던져줬다”며 “과거에도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무거운 형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유사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어 언제 경쟁국이 반도체 기술을 따라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윤지상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그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핵심 자산인 경우가 많지만, 그에 비해 양형기준이 너무 낮게 설정돼 있다”며 “기술유출은 양형기준상 지식재산권범죄 중 영업비밀침해행위에 해당하고, 기본양형이 국외침해의 경우에도 징역 1년에서 3년 6월 사이가 기본이다. 실제로 법원에서 기술유출과 관련해 재판받게 되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단기 실형에 불과하다. 기술유출로 인해 기업이 받는 타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표변호사는 이어 “군사기밀을 누설하는 경우 형법상 간첩죄에 해당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국내 기업의 기술은 사실상 군사기밀과 같은 중요도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 부분에 관해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해야 하고, 실제 법원의 형량 또한 훨씬 더 엄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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