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뇌세포 활용한 ‘바이오 컴퓨터’ 등장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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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 지능’
컴퓨터보다 학습능력-저장용량 우수
뇌 질환 메커니즘 분석에도 도움

토머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의 확대 이미지. 미 존스홉킨스대 제공
토머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의 확대 이미지. 미 존스홉킨스대 제공
인간 뇌세포로 구동되는 ‘바이오 컴퓨터’가 현실화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이 인간 뇌세포를 배양해 컴퓨터의 하드웨어로 활용하는 바이오 컴퓨터 개발 구상을 내놨다. 인간 뇌에 가까운 컴퓨팅 성능 확보는 물론 신경질환 예방과 치료 등 의학 분야 발전도 노릴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토머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 교수가 주도하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뇌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는 혁신적인 바이오 컴퓨터 개발 계획을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하퉁 교수는 “이 새로운 연구 분야를 ‘오가노이드 인텔리전스(OI)’로 부르기로 했다”며 “기술 개발을 위해 모인 최고의 과학자들이 빠르고 강력하며 효율적인 바이오 컴퓨팅 시대를 수십 년 내 열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뇌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3차원으로 배양·재조합해 만든 인공 뇌세포를 말한다. 연구진이 염두에 두고 있는 뇌 오가노이드는 3차원 구조로, 기존 2차원 구조로 배양한 세포에 비해 뇌세포 밀도를 1000배가량 높일 수 있다. 이는 신경계의 단위인 뉴런을 더 많이 연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연구팀은 2012년부터 인간 피부 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재설계해 뇌세포로 성장시키고 기능성 오가노이드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이 만들어낸 오가노이드에는 약 5만 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는데 이는 초파리 신경계에 있는 신경세포 수와 맞먹는다. 연구팀은 이 오가노이드로 바이오 컴퓨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뇌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OI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공동 연구자인 브렛 케이건 호주 바이오테크 기업 ‘코티컬랩스’ 최고과학책임자는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뉴런’에 OI의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접시에서 배양한 ‘미니 뇌’가 컴퓨터 아케이드 게임 ‘퐁’에서 인공지능(AI)보다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바이오 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의 에너지 수요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톱500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지난해 11월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 슈퍼컴퓨터 ‘프런티어’는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인간 두뇌의 연산 능력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간 두뇌보다 100만 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프런티어 구축에는 6억 달러(약 7933억 원)가 투입됐다.

정보 저장 용량도 뇌가 컴퓨터보다 앞선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하퉁 교수는 “컴퓨터의 작은 칩에 트랜지스터를 넣는 데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뇌에는 1015개 이상 지점을 통해 연결된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다”며 “뇌의 저장 용량은 무려 2500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뇌 오가노이드를 바이오 컴퓨터로 발전시키기 위해 우선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OI가 되려면 현재 초파리 신경계 수준인 5만 개의 뇌 신경세포를 1000만 개로 늘린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어야 한다.

뇌 오가노이드와 기존 컴퓨터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 뇌 오가노이드의 신호를 포착하고 오가노이드에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작은 전극으로 촘촘히 덮인 유연한 껍질 형태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장치를 개발했다.

연구팀의 연구는 컴퓨팅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신경 발달 장애·퇴화 관련 약물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레나 스미르노바 존스홉킨스대 환경보건·공학 교수는 “OI는 인간이나 동물 실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폐증 등 뇌질환 관련 신경망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라며 “인지 문제를 겪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yh@donga.com
#인간 뇌세포#바이오 컴퓨터#줄기세포#오가노이드 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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