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부녀 살인 현장에 나타난 콧수염의 검은 망토들 [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5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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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7

▶요즘 법조인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검사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야당 대표는 대장동 아파트 부지를 허가하면서 특혜를 줬다는 혐의로 검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 주 국회에서 여야가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이고 만약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면 전직 변호사 출신의 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 여부는 판사가 결정하게 됩니다. 소위 50억 클럽에 들어가 건설업자들로부터 큰 댓가를 약속받은 듯한 전직 법관과 검사들의 운명도 다시 한번 법의 심판대에 올리라는 여론이 높습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법의 잣대로 봤을 때 대장동 공방이 어떤 결론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지루한 법리 다툼으로 허송세월할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발견한 ‘백년사진’에는 독특한 복장의 남성들이 등장합니다. 1923년 2월 24일자 지면입니다. 망토를 걸치고 중절모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한 곳에 모여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보니 검사와 판사 그리고 경찰입니다. 살인사건이 났다네요. 그 현장을 검증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소개하는 [백년사진] 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장충단 참극의 현장 = 당일 오후 7시 검사 임검 광경. O표는 시체, ㅁ 표는 말광 예심판사, X표는 산중 검사


▶ 사진과 함께 보도된 기사 내용을 한번 보시죠. 세 개의 기사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백주 본처 참살 - 재작일 오후 3시 장충단에서 20세 청년이 아내를 죽이어>

23일 오후 3시반경에 시내 장충단공원 남산장 뒤에 있는 솔밭 가운데서 슬프게 부르짓는 소리가 들림으로 그 부근으로 돌아다니던 그곳 원정(園丁) 두 사람이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 본즉 어떤 한 남자가 여자를 가로타고 앉아있어 소리를 지르고 달려간 즉, 그 남자는 일어나서 장충단 뒷길로 달아나고 그 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목과 어깨에 6,7 군데에 칼을 맞고 붉은 피를 흘리면서 마른 숲풀 위에 죽어넘어져 그 참담한 광경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는데 원정 한 사람은 그곳에서 지키고 한 사람은 범인을 따라 산길을 넘어 즉시 신정순사파출소에 알리는 동시에 범인은 정신없이 신정 유곽 부근에서 헤매는 것을 여러 사람과 협력하여 붙잡아 파출소로 끌어갔더라.

<판검사 출동- 현장 시체 임검>

이 급보를 들은 본정경찰서에서는 복전(福田)사법계 주임, 경성지방법원검사국에서는 말광(末廣)예심판사와 산중(山中)검사가 계원을 데리고 다섯 시경에 현장에 가서 여덟시 경까지 시체를 임검하고 여러 가지 증거물을 압수하였다더라.

<남자는 부자 자식> -세배 갔다 오는 안해를 끌고가 죽여

이와 같이 참혹한 비극을 일으킨 주인공은 어떠한 사람인가. 서리 같은 칼을 들고 약한 부인의 목숨을 빼앗은 남자는 부자 송병우의 둘재 아들 송정규(20세)라는, 현재 낙원동 한성강습원 생도요 무정한 칼끝에 세상을 버린 여자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 설던 김희의 맏딸 김재유(22)라는 가해자의 아내되는 사람이라. 작년 봄에 그여자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고향을 떠나 시내 공평동 48번지에서 살림하게 됨을 기회로 공부하는 자기 남편을 따라 작년 가을에 서울에 올라와 하늘같이 믿는 남편과 같이 자기 친정에서 살은 터인데 지난이십일일전 그 여자는 시내 숭이동 시백모의 집에 세배하러 갔다가 재작일 돌아오는 길에 자기 남편이 따라와서 같이 전차를 타고 장충단에 까지 끌고가서 그와 같이 죽인것이더라.

▶ 제가 이해한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울 장충단 공원 뒤쪽 소나무 숲에서 여성의 비명 소리가 나, 그 곳의 인부 두 명이 가보니, 여성을 한 남성이 칼로 지르고 달아나고 있었고 그를 뒤쫒아 기생집 근처에서 배회하는 것을 잡아 파출소에 넘겼다. 목과 어깨 6~7곳을 칼레 찔린 여인은 결국 사망했고, 사진은 이 사건을 맡은 판사와 검사가 경찰들과 함께 현장을 검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검사와 판사가 같이 현장에서 시체를 검사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O, ㅁ, X 의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기자가 사진에 표시를 한 것 같은데요, 각각 죽은 여인의 시체, 판사 그리고 검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에는 경찰관도 출동했다고 나와 있지만 누가 경찰인지는 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판사가 사건 현장에 직접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 게다가 사건 초기에 검사와 판사가 함께 현장에 나타난 모습은 아주 특이합니다. 가운데 사람은 조명기구를 들고 사건현장을 비추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일본인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 등이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현장 검증을 벌였는데 사진은 오후 7시경에 촬영된 겁니다. 한 겨울임에도 무려 3시간 동안 살인 사건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았군요.

복장이 눈에 띄는데 중절모에 콧수염. 게다가 망토와 검은 구두. 권력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당시 조선의 엘리트들도 망토를 입었을까요? 혹시 망토가 일본인 권력자들의 트레이드마크였을까요? 복전(福田), 말광(末廣), 산중(山中) 은 각각 경찰, 판사, 검사의 이름인데, 모두 일본인 이름입니다. 백주 대낮에 벌어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을 일본인들이 조사하고 있는 모습인 거죠.

▶ 등장인물들은 왜 카메라를 보고 있을까요? 카메라를 의식하고 마치 기념사진에 응하는 듯하죠?

사진 설명을 보면 이 사진을 촬영한 시각은 오후 7시입니다. 겨울철임을 감안하면 이미 사방이 어두운 시간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사진을 찍기가 참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카메라 플래시가 발달해 연속해서 촬영이 가능하지만 100년 전에는 지금처럼 가볍고 빨리 충전되는 플래시가 없었습니다. 큰 전구라고 할 수 있는 벌브를 터뜨려야 인공 조명이 발생했습니다. 이 벌브를 터뜨리는 순간 큰 섬광이 일어납니다. 그 순간 피사체는 누구라도 카메라맨을 향해서 시선을 돌리게 되고 그 순간이 필름에 기록됩니다.

벌브를 터뜨리고 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벌브를 갈아 끼워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장전하고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카메라맨과 피사체 모두 어색한 분위기였을 겁니다. 현장은 그야말로 한 장으로 승부를 내야 했을 겁니다.

그래서 검사와 판사 경찰이 모두 카메라를 쳐다보는 어색한 모습이지만 이 사진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은 ‘백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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