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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박치기왕 김일과 명승부’ 日 이노키 눈 감다

입력 2022-10-03 03:00업데이트 2022-10-0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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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등과 함께 ‘역도산 3대 제자’… ‘프로레슬링 황금기’ 이끈 주역
1976년 알리와 ‘세기의 일전’ 펼쳐
은퇴후 정계 진출… 30여 차례 방북
“스포츠 통한 세계평화가 내 일”
이노키가 참의원 시절인 2014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30여 차례 북한을 오가며 북한 최고위층과 교류했다. 사진 출처 AP 뉴시스
일본 프로레슬링 최고 스타로 군림했던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가 1일 신부전으로 별세했다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이 2일 전했다. 향년 79세. ‘박치기왕’ 김일과 명승부를 펼쳐 한국에서도 유명한 그는 은퇴 후 정계로 진출해 참의원을 지냈다. 3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최고위층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특히 권투 헤비급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1976년 도쿄 부도칸(武道館) 특설 링에서 벌인 ‘세기의 일전’은 당시에는 이상하고 시시한 경기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훗날 종합격투기의 원조 격으로 재평가받았다.

194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중학교 때 가족과 브라질로 이주했다. 커피콩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현지를 방문한 재일교포 프로레슬러 역도산에게 발탁돼 17세 때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김일,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의 3대 제자로 꼽힌 그는 1960, 70년대 스타로 부상하며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서울 장충체육관과 도쿄 고쿠기칸(國技館) 등을 오가며 펼친 김일과의 라이벌전은 당대 최고의 흥행 경기로 꼽혔다.

이처럼 그는 선배 겸 라이벌인 김일과 각별한 사이였다. 1970년 그의 데뷔전 상대도 김일이었고 한때는 방도 같이 썼다. 투병 중인 김일을 격려하러 2000년대 수차례 한국을 찾았다.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 선물도 전달했다.

이노키는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신이 창당한 스포츠평화당 대표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역도산의 딸이 북한에 사는 인연으로 1994년 평양에 처음 방문했고 이후 30여 차례 북한을 찾았다.

그는 일본 국회의 허가 없이 방북했다는 이유로 30일간 국회 출석을 정지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정계에서는 프로레슬러 출신 의원의 괴짜 행동으로 치부했지만 이노키는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가 내 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일본 사회의 주요 현안인 납북자 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라도 북한과 일본의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며 “정부가 나를 대북 채널로 써야 한다”고 외쳤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과도 교류가 깊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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