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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메모의 습관[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2-05-25 03:00업데이트 2022-05-25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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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치마 벗지 않고 거리 나선 당혹감
기억력 실수 늘자 메모 습관 들이기 시작
품 더 들지만 두려움 줄어, 변화는 필요하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장편소설을 쓸 때도 노트를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몇 장을 넘기지 않았다. 독자들과 만나면 으레 평소에 쓸 거리를 메모해 두는가, 어떤 식으로 작성해 놓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데 그때도 거의 기억에 의존한다고 답해왔다. 오히려 노트에 이러저러하게 소설을 써야겠다고 적고 나면 그걸로도 충분했는지 결국 쓰지 않게 된다고. 머릿속에 든 생각들을 육체를 통해 꺼내놓는 과정이 메모라면 그건 정신과 육체가 같이 나누는 대화에 가까울 것이다. 이미지나 단순한 착상에 불과했던 것이 글자의 몸을 갖게 되고 그렇게 구체화된 생각의 육체를 다시 눈과 머리를 통한 사유를 통해 재검토하는 것. 그런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은 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요즘 나이가 들면서 정말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운동 시간을 예약하고도 엉뚱한 타이밍에 가서 “선생님, 저 왔습니다” 하는 바람에 운동 강사가 당황해하는 일이 늘었다. 원고를 쓰러 나간다며 노트북을 안 들고 나가기도 하고 원고 마감이나 강연 날짜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대학 선배가 십수 년 전 자기 집에서 한 집들이 사진을 보내면서 우리 참 앳됐다라고 했는데 내게는 그날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어 너무 미안해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전주에 강연을 하기 위해 내려갔는데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맛있게 먹은 뒤, 음식물이 튀는 걸 막으려고 입었던 앞치마를 그대로 멘 채 시내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과 일종의 허탈감이란, 거기에는 차마 웃어넘길 수 없는 우려와 두려움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변화들을 한탄만 할 수는 없었다. 닥치기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이제 정말 ‘실제상황’이니까. 나는 평생 몸에 익히지 못했던 메모의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십대 중반인 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의 정확히 중간에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10대 때부터 PC를 사용했지만 아직 디지털이 한정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던 시기라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모든 학습 자료는 종이책으로 봤고 필기 역시 노트로 했다. 이후 편집자로 종이책을 만들면서 역시 종이로 텍스트를 읽어왔던 나는 지금도 전자책으로는 자료를 잘 읽지 못한다. 그러면 노트로 메모를 하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편리성이 문제였다. 검색이나 이메일, 모바일 메신저들을 이용하면서 휴대전화가 내 기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결국 나는 종이노트만 고집하던 이전의 습관을 바꿔 휴대전화도 메모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단 메모 폴더를 단편과 관련한 것, 앞으로 쓸 장편과 관련한 것 그리고 에세이로 쓰고 싶은 것들로 나눴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쓰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그걸 그냥 이미지로 간직했던 시절과 달리 그런 순간이 오면 폴더를 찾아 문장으로 적어놓았다. 지금 열어 보면 그 폴더들에는 “은빛머리 신사는 전화부스에서 하루를 보냈다”라는 문장과, “엄마의 돗나물”이라는 키워드가 메모돼 있다. 모두 나중에 글로 쓰고 싶은 장면들이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주인공에 대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이전보다 시간과 품이 더 들었지만 일단 남겨놓자 인물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기억 못 하리라는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그동안 메모를 잘 하지 않은 건 작업에 있어 어떤 돌발성, 우연한 상상력의 전개, 불안정하고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 같은 것을 선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단순히 메모하지 않는 것이 그런 소설적 지향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종의 기초 정도로는 여겼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방식을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역시 시간의 물리적 변화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며 분투하는 사람에 불과하니까. 변화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치명적인 불편을 얻을지도 몰랐다. 아예 쓸 것이 기억나지 않는 상태 말이다.

앞치마를 돌려주러 중국집으로 되돌아갔을 때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별일 아니에요. 이런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하고 나를 위로했다. 개중에는 너무 멀리 가버려 그냥 안 돌려주고 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그래도 돌아올 수 있을 정도만 간 게 어디냐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전주의 이 오후를, 그 동네에서만 사십 년 넘게 자장면을 만들어온 사장님이 건네는 그 괜찮다는 말을 휴대전화에 메모했다. 만약 그 얘기를 당신이 글로 읽고 있다면 메모하는 습관 덕분일 테고, 그렇다면 내 새로운 선택이 아마도 옳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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