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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김용석]한미 기술동맹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시선

입력 2022-05-21 03:00업데이트 2022-05-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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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이후 40년 만의 근본적 지형 변화
우리는 변화 돌파할 비전과 의지 가지고 있나
김용석 산업1부장
1983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시어도어 레빗 교수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화두로 제시한 이후 40년 이어져 온 세계 경제 질서는 지금 큰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는 글로벌 경제 질서를 착취적으로 활용한 중국에 미국이 메스를 들면서 시작됐다. 이는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의 진영 대결이 됐다. 경제 블록화와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이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은 근본적으로 다른 시장 지형을 맞닥뜨리고 있다.

기업인들은 20일 한미 양국 정상이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만난 장면은 이런 지형 변화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명확히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반도체의 심장인 한국과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각각 북한과 중국, 그리고 넓게 보면 러시아를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동아시아 방문지가 한국이고, 한국 대통령과 기업인을 만나는 첫 장소가 반도체 공장이라는 그 자체가 강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미국과 기술 동맹으로 한국은 중국과 첨단기술 격차를 벌릴 시간을 벌게 됐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핵심 기술을 공유하면서 미국 대중(對中) 전략의 수혜를 입을 수도 있다. 기업인 A 씨는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이익을 얻기 어려워졌지만 방향성과 원칙을 명확히 하고 첨단기술 성장 기반을 다지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파티의 시작’이 아니라 ‘험난한 도전의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업인 B 씨는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서 미국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동은 이탈했고, 유럽은 무기력하다. 미국 주도 경제블록이 예전처럼 크고 강할까. 2차 대전 후 마셜플랜으로 유럽을 재건하고 공산주의 블록에 승리한 파워를 지금도 보여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밖에도 “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의 공급망 재편이 가능할까. 재편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지는 않을까. 중국이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가지는 않을까…” 기업 현장엔 명쾌한 해답 없는 질문만 가득하다.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에 잇따라 사무실을 개설하고 미국 내 투자를 늘리며 지형 변화에 대응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바이든의 전략 지도에 명확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원 팀’으로 손발을 맞출 한국 행정부, 입법부는 도전을 헤쳐 나갈 시야와 실력,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1995년 ‘세계화’ 영문 표현 논쟁이 있었다. 정부는 끝내 한글 발음을 그대로 옮긴 ‘Segyehwa’를 선택했다. 국제 통용된 ‘Globalization’은 국경 없는 시장 통합을 의미하는 반면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국가전략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유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제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 탓에 외환위기를 맞고 말았다.

정부가 민간 주도 경제성장으로 선회하면서 기업 정책의 이념 과잉을 덜어낸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와 협업은 여전히 어렵다. 필요 인재 육성은 아직 부족하다. 눈앞의 이해다툼이 시야를 가려서다. 변화 속 국민 안전과 번영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국가의 그 어떤 성취도 의미를 잃게 된다. 전장에 나선 기업들은 우리가 함께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질문하고 있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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