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결혼해서 힘든게 남편 탓이라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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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박우란 지음/256쪽·1만5000원·유노라이프

인간 심리를 다룬 에세이나 심리학 서적은 ‘문장형 제목’을 띤 경우가 많다. ‘서른, 진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더퀘스트),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빌리버튼),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흐름서적)가 그렇다. 명사형 제목은 함축적인 데 비해 문장형 제목은 명료하다. 제목만 봐도 책이 어떤 내용일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 남편을 버리라니. 결혼 제도를 권장하는 현대 문명에 반하는 무서운 제목이지만 주제가 명확하다. 언뜻 봐도 여성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타깃 독자는 여성일 것 같지만 ‘남편’을 언급했기 때문에 남성 독자의 시선도 끈다. 나 같은 중년 남성도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서점에 진열하는 책으로 제격인 제목이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나 역시 호기심이 생겨 책을 펼쳤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심리적 자립’이다. 결혼과 별개로 자신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주체성을 잃은 채로 남편 등 가까운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니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수도원에서 10년간 영성과 심리를 탐구했고 이후 정신분석을 공부한 저자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의 정신분석 방법을 이용해 독자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물론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은 난해하다. 심리학 전문 용어는 낯설다. 인간 행동의 근원에 성적(性的) 동기가 있다는 가설은 받아들이기에 유쾌하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책에는 심리적인 문제나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상담자를 찾아간 여성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유부남만 만나는 여성, 증거가 없음에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여성, 남편과 만나면 죽일 듯이 싸우면서도 이혼할 생각은 없는 여성, 남자 상사와 일하는 게 유독 힘든 여성,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 저자는 사연 속 주인공의 무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냉철하게 파고든다.

저자의 분석은 남편을 향하기도 한다. 관계에서 한쪽만의 잘못은 없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타자의 심리를 함께 분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중년 남성 독자들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간은 어른이 돼서도 자신을 이해하는 데 서툴다. 질투 분노 욕망 등 원초적인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감정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정신분석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펼쳐보면 좋을 책이다.



손민규 예스24 인문MD
#결혼#남편#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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