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철밥통’ 의사면허… 진료기록 조작 - 환자 성추행 해도 진료 계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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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진단서-비밀누설 등 아니면 살인-강간 강력범도 면허취소 안돼
의료사고뒤 진료기록부 허위작성, 징역 6개월 전부… 면허는 유지
해외선 유죄판결때 면허 정지-취소… 국내선 他직역보다 솜방망이 처분
‘금고이상 형집행뒤 5년 면허취소… 의료법 개정안, 국회 법사위 계류중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A 씨(64)는 2014년부터 8년째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남편을 돌보고 있다. 남편 B 씨(69)는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받은 후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 내시경 과정에서 대장에 5cm 크기의 구멍(천공)이 생겼지만 의료진이 제때 대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병원 C 원장은 이 같은 의료 사고를 내고 진료기록부까지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9일 C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등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장 내시경을 2회 했는데도 1회만 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고, B 씨를 큰 병원으로 옮긴 시각을 30분 당겨서 기록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인정됐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아직 영업 중이다. C 원장의 유죄가 추후 확정되더라도 현행법상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A 씨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아직 의사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성범죄 재범한 의사도 면허 계속 유지


현행 의료법상 C 원장처럼 진료기록부를 허위 작성하는 등 의료법을 위반한 경우뿐 아니라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의료법 제8조는 ‘의사 결격 사유’에 허위 진단서 작성, 업무상 비밀 누설, 허위 진료비 청구 등 한정된 위반 사항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 성추행을 저지른 뒤 또다시 여성 환자를 성추행한 의사 D 씨도 현재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D 씨는 지난해 2월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됐다. 이후 병원을 방문한 다른 여성 환자에게 “혼자 사느냐, 최면 치료를 받아본 적 있느냐, 오늘 손님이 없어서 여자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신체 부위를 만지며 성추행한 혐의로 올 4월 징역 6개월이 확정됐다.

A 씨 등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방승환 변호사는 “법원이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게 의료기관 취업 제한 명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재범 위험성이 입증되어야만 가능하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경우 면허 취소가 가능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성폭력 혐의로 수사를 받은 의사는 149명, 폭행은 311명, 음주운전은 170명이다. 적지 않은 수의 의사들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의사 자격을 유지하면서 환자들을 진료한다.

○ 해외에선 어떤 범죄든 유죄 판결 시 면허 정지


해외에선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면허 취소 처분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어느 범죄로든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된다. 미국은 다수의 주에서 유죄 전력이 있는 의사는 면허를 받을 수 없다. 독일은 의사가 기소될 경우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면허를 정지하고 위법 사항이 확정되면 면허를 영구 정지한다.

국내의 다른 직역과 비교해도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처분이 솜방망이라는 지적도 있다.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의 경우 어느 범죄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이 끝나면 5년간 자격을 취소한다. 세무사와 변리사는 3년간 자격이 취소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월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형(사형, 징역, 금고)을 선고받고 형의 집행이 끝난 뒤 5년 동안 의사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건복지부도 국회에 “의료인의 면허 취소 사유를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종 수준으로 확대해 의료인 범죄를 예방하고 환자의 안전을 제고하는 법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의료 업무 수행과 무관한 범죄 행위인데도 의사 면허에 대해 차별적인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철밥통#의사면허#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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