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조건없는 휴전 합의에도…갈등 불씨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1일 0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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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국제사회 중재를 받아들여 휴전에 돌입키로 했다. 양측이 교전을 시작한 10일부터 사망자만 240여 명을 넘기는 인명 피해를 남긴 끝에가까스로 무력사용 중단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양측 간 갈등 원인이 된 이슬람 종교 성지에 대한 통제 문제와 동예루살렘 내 유대인 정착촌 문제 등 본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했고, 양측 충돌 과정에서 극우 강경파 세력 목소리가 커져 이후의 갈등 씨앗도 남겨 놓게 됐다.

● 11일 간 무력충돌…조건 없는 휴전 합의
타임즈오브이스라엘 등 이스라엘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20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상호간에 조건 없는 휴전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각은 이날 오후 3시간 가량 안보 관련 장관 회의를 열고 휴전안에 대한 표결을 거쳤으며, 만장일치로 휴전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날 하마스 역시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과 11일간의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휴전은 현지 기준으로 21일 오전 2시에 시작된다. 한국 시간으로 이날 오전 8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집트가 양측 중재역을 맡았다. 이날 양측 휴전 합의 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통화하고 휴전 협정 방향을 점검하는 등 국제사회가 양측 중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이날 이스라엘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가자지구 공습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휴전 합의 전날까지도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의 목표는 하마스 억제로 가자지구 장악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강경대응 원칙을 재확인했으나, 결국 국제사회 압박을 받아들여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이스라엘로선 10일부터 연일 가자지구 공습을 통해 하마스의 군 시설을 무력화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양측 충돌 기간 동안 바이든 미 대통령이 네 차례나 전화통화로 휴전을 촉구하자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미국은 이스라엘이 공습을 강행할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 공습을 받아 수세에 몰린 가운데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자 국제사회 중재를 받아들였다. 하마스는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이스라엘과 종종 무력 충돌을 빚어왔으나, 대공방어가 사실상 없다시피해 이스라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20일까지 사망자 수는 팔레스타인 232명, 이스라엘 12명에 이른다. 가자지구 측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측서 부상자는 2400여 명(팔레스타인 1900명)이 나왔다.

● 갈등은 그대로…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뇌관
양측 무력충돌은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이스라엘 경찰이 동예루살렘 내 이슬람 성지인 알아끄사 사원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를 강경 진압하자 하마스가 이스라엘 방향으로 10일 로켓포를 발사하고 이에 이스라엘군이 전투기 공습으로 반격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라마단(이슬람의 금식성월¤올해는 4월 13일부터 이달 12일) 시작인 13일 이스라엘 경찰이 “군중들이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무슬림들이 저녁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기 위해 모이는 동예루살렘 내 다마스쿠스 광장도 폐쇄하고, 알아끄사 사원 내에 있는 기도 방송 시설을 차단하면서 양측 충돌 조짐이 보였다.

여기에 이스라엘 당국은 동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셰이크자라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에서 10명 어린이를 포함한 40명 팔레스타인 거주민을 강제로 추방하는 것과 관련해 법원 판결이 이달 10일로 예고되자 억눌려 있던 팔레스타인들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약 7만 명 규모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라마단이 끝나가던 7일부터 알아끄사 사원 근처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고자 사원 경내에 진입했는데, 하마스는 “경찰이 성지에 침입해 더렵혔다”며 사원에서 10일 오후 6시까지 경찰 철수를 이스라엘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10일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점렴한 것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로 이미 더 큰 갈등 불씨가 예고돼 있던 터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예루살렘서 기념행진 행사를 벌였고, 이에 자극받은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경찰과 재차 충돌했다. 당시 시위대 부상자는 300명이 넘었다. 하마스는 예고대로 10일 오후 6시 가자지구서 이스라엘 방향으로 로켓포 200여 발을 발사했다. 이스라엘군도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맞불 공습에 나서면서 26명이 숨졌고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피의 보복’으로 사태가 번졌다.

휴전을 선언한 만큼 양측의 무력 충돌은 수습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이슬람 성지 알아끄사 사원에 대한 이스라엘 경찰 통제 문제 등을 두고 팔레스타인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 지역을 통제하게 된 뒤로도 알아끄사 사원, 황금돔 사원 등 이 지역 이슬람 성지 관리를 독립 이슬람 기구인 ‘이슬람 아우카프’에 맡기면서 이슬람 자극을 피해왔는데, 최근 들어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팔레스타인 측은 경계해오고 있다. 여기에 동예루살렘 내 유대인 정착촌이 규모가 커져 87% 정도가 유대인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극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는 휴전 합의 과정에서 문제가 된 셰이크자라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퇴거 방침을 철회할 것을 이스라엘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스라엘이 어떤 반응을 내놓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휴전 합의 성명에서 밝힌 ‘조건 없는’이라는 표현이 휴전과 관련해 오간 합의 조건들을 수용 혹은 검토하지 않고 봉합하는 방향으로 처리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로부터 로켓포 도발 중단과 이스라엘 공격용 땅굴 건설 중단 등을 요구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 휴전 합의 이뤄졌으나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 불거져
가뜩이나 이스라엘의 봉쇄로 식량난과 식수난을 겪는 가자지구가 11일 간의 공습 피해까지 받으면서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됐다. 이를 수습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한 2007년 이래 강도 높은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인도주의 물품을 제외하곤 물자 반입이 대부분 제한되고 있다

현지 보도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설명을 종합하면, 가자지구 내 담수화 시설이 타격을 입어 25만 명이 식수 공급이 중단됐다. 또 19일까지 약 450채의 건물이 파괴 등 심하게 손상됐는데, 이중에는 병원 6곳과 보건소 9곳이 포함된다. 가자지구 내 피란민은 7만 명이 넘는다. .

양측 충돌에서 가자지구서만 약 65명 어린이가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이 아닌 군 시설만 타격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이를 분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15일 가자지구 내 난민촌 건물이 공습을 받아 일가족 10명이 숨졌는데 어린이 8명과 여성 2명이었다. 폭격 당시 집에 있던 일가족 중 생후 5개월 아이만 살아남았다.

당시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는 팔레스타인 소녀 나딘 압델 타이프(10)가 폐허가 된 이 건물 옆에서 “나는 의사가 되고 싶은 열 살 아이일 뿐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게 왜 이런 상황이 주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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