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명운 좌우한 검찰총장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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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4월 29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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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2021.4.28 © News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2021.4.28 © News1
문재인 정부와 차기 정권에 2년 임기가 걸쳐 있는 새 검찰총장의 인선 절차가 막이 오르면서 과거 정권의 명운을 좌지우지했던 검찰총장의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통상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닥치면 하던 수사도 일시 중단하는 것이 검찰의 불문율이지만 반대로 검찰 수사가 대권의 향방을 갈랐던 적도 우리 헌정사에 적지 않았다.

가까운 사례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가속화한 검찰의 국정농단 수사였다. 박근혜 정부가 4년차로 접어들었던 2016년 가을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검찰 수뇌부는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전면적인 정권 수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졌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지지율 정체에 고전하던 문재인 후보는 탄핵 정국을 주도하며 19대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됐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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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탄핵 정국은 최순실 씨가 국정에 개입한 단서를 확인한 언론에 의해 촉발됐지만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를 밝히고 법적으로 단죄한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대통령 탄핵과 그에 따른 조기 대선도 실시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 정권의 안위를 위해 TK 출신의 김수남 대검 차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라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정권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대구 출신 총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을 지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역설적인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당시 검찰은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태에 대응해 수사 착수를 주저하지 않았고 정권을 보호하려는 별도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전격적으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면서 대통령민정수석실에 이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청와대 관계자들이 크게 당혹해했다는 전언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서 김대중 정부 초기에 걸쳐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1997년 15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터진 ‘김대중(DJ) 후보 비자금 의혹 수사’에 대해 유보 발표를 한 것도 검찰 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19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는 한 때 6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두 아들의 병역미필 문제가 터지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반전을 위해 집권여당인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1997년 10월 7일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총재가 1992년 대선에서 쓰고 남은 비자금 670억 원을 친인척 가·차명 계좌로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일주일 뒤인 10월 16일 이 후보 측이 DJ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으나 5일 뒤인 10월 21일 김태정 총장은 “김 총재 비자금 의혹 고발사건 수사를 15대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유는 “수사를 계속할 경우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해질 것이고, 수사 기술상 대선 전에 이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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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비자금 수사 유보는 김태정 전 총장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고, 검찰의 유보 방침 발표 이틀 전인 10월 19일 검찰총장을 청와대 관저로 조용히 불러 “비겁한 수사를 하면 되나”라며 수사중단을 지시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중단을 통해 선거 중립을 지킴으로써 DJ의 당선을 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태정 전 총장은 대선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던 DJ를 도운 공로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유임된 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지만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장관직에서 해임된 뒤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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