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 마른 몸, 기괴한 움직임…‘스위트홈’ 연근이의 실체는?

김재희기자 입력 2021-01-11 16:00수정 2021-01-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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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크기의 ’근육괴물‘,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연근괴물‘은 놀라움 그 자체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에 대해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 한 평론가가 남긴 리뷰다. 또 다른 인기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한 평론가는 ‘숱한 아포칼립스물과 스위트홈의 차별점은 신선한 괴물들에 있다’고 적었다. 스위트홈은 욕망으로 인해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상황에서 ‘괴물화’를 버티는 사람들이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영화 정보 커뮤니티 방문자 수 1, 2위를 다투는 사이트 내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 넷플릭스 ‘톱10’을 휩쓴 스위트홈의 인기 요인은 웹툰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듯한 크리쳐에 있다.

운동중독으로 “프로틴”을 중얼거리는 근육괴물, 머리의 절반이 잘려나간 단면이 연근 같아 ‘연근이’라는 별명도 붙은 연근괴물 등 10종이 넘는 크리쳐들에 숨을 불어 넣은 주역들을 만났다. 김설진 안무가(40)와 시각특수효과(VFX) 업체 ‘웨스트월드’의 이병주 슈퍼바이저(39), 정고은 이사(42)가 그들이다.

● 빼빼 마른 몸, 기괴한 움직임… ‘연근이’의 실체 김설진 안무가

벨기에 현대무용단 ‘피핑톰’ 단원이자 엠넷 ‘댄싱9’ 시즌2·3의 우승자로도 잘 알려진 김 안무가는 스위트홈에서 크리쳐들의 움직임을 설계했다. 이응복 PD는 김 안무가가 크리쳐 디자인을 위해 레퍼런스로 제시한 ‘반덴브란데 32번지’ 무대 영상에서 그가 뭉크의 ‘절규’를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연근괴물 역할도 함께 맡겼다. 연근괴물은 기괴한 움직임, 삐쩍 마른 몸으로 시청자들이 ‘원작과 가장 싱크로율(유사성)이 높은 캐릭터’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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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만난 김 안무가는 크리쳐 구축 과정을 ‘전사(前史)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쳐들은 욕망에 잡아 먹혀 괴물이 됐기에 인간일 때의 욕망을 상상해 움직임을 설정했다는 것. 그는 “크리쳐의 행동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고,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유 없는 움직임이 나오게 된 전사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안무가가 연기한 연근괴물도 철저한 전사의 구축을 통해 태어났다. 연근괴물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한 인물로, 술에 취한 채 과장 욕을 하던 중 괴물로 변한다. 괴물화 직후 ‘재헌’에게 머리가 베여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김 안무가는 “직장 상사로부터 모멸감을 느낀 인물인 만큼 ‘누가 내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소리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각이 발달한 크리쳐로 설정했다”며 “시력을 갑자기 상실했기에 서툰 걸음을 표현하기 위해 발바닥의 감각에 의존해 발을 질질 끌고, 손톱으로 벽을 더듬거리며 걷는 모습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머리가 잘려 피가 빠져나간 연근이의 빼빼 마른 몸을 표현하기 위해 11kg을 감량하는 혹독한 다이어트도 감행했다.

연근괴물의 목소리도 김 안무가가 직접 냈다. 그는 “코의 윗부분이 잘렸으니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파이프오르간 뚜껑이 열린 듯한 쇳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크리쳐의 외형은 절반의 집념과 절반의 타고난 감각으로 만들어냈다. “하루 종일 괴물 생각만 하니 모든 사물들이 괴물과 연관된 이미지로 변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을 보며 크리쳐의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살렸고, 벽지의 패턴부터 꼬여있는 전선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모든 사물이 영감의 원천이 됐다.

“한라봉 사진을 보다가 눈알괴물의 두꺼운 피부와 주름진 질감을 떠올렸고, 난로를 켜면 서서히 불이 주황색으로 달궈지는 과정을 근육괴물의 몸이 붉게 변하는 과정에 녹였죠. 힘들지 않았냐고요? 스위트홈을 만들 땐 제 안에 없던 다른 호르몬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보겠냐’는 생각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임했어요.”

●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실시간 CG 구현한 웨스트월드

웨스트월드는 스위트홈에 참여한 유일한 VFX 업체로 크리쳐들의 움직임, 질감, 빛에 따른 색감 변화 등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총괄했다. 6일 경기 고양시 웨스트월드 본사에서 만난 정 이사와 스위트홈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 슈퍼바이저는 가장 주목할 점으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꼽았다. 버추얼 프로덕션이란 촬영 현장에서 CG가 입혀진 화면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근육괴물은 키가 430㎝에 달해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활용하면 근육괴물 역할을 하는 배우의 움직임에 CG가 입혀져 카메라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메라 안에서 가상공간의 3차원 좌표를 만들고, 좌표 내에서 크리쳐의 움직임을 파악해주는 ‘N캠’을 도입했다. N캠이 가상공간과 현실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넷플릭스의 기술 지원으로 N캠을 제작하는 영국 기업인 'N캠 테크놀로지' 본사 직원을 비롯한 N캠 전문가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웨스트월드 직원들에게 N캠 활용 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정 이사는 “N캠은 장비들이 많고 설치도 복잡해 스튜디오 촬영에만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스위트홈에서 야외 촬영에도 N캠을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을 처음 시도했다”며 “N캠을 공급한 해외 업체도 ‘이 기술을 야외에서 사용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놀라더라”고 전했다.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로 더욱 정교한 장면 연출이 가능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크리쳐의 크기가 촬영 감독의 상상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다.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이 접목되면 CG가 입혀진 완성된 크리쳐가 카메라에 나타나 촬영감독이 정확하게 앵글을 잡을 수 있다. 배우가 크리쳐와 눈을 마주치는 연기를 하거나, 동선 파악을 할 때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디테일한 크리쳐들의 CG도 몰입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흡혈괴물의 입에서 나오는 촉수, 연근괴물의 잘린 머리 단면과 펄럭이는 귀 등 특수효과로 만들지 못하는 크리쳐의 특징들을 CG로 구현했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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