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말 지킨 ‘말모이·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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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2월 22일 11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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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087호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의 표지 및 오동나무 함.(문화재청 제공)© 뉴스1
보물 제2087호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의 표지 및 오동나무 함.(문화재청 제공)© 뉴스1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말모이 원고’ 등 조선~근대 한글유산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보물 제2085호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이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했다.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뤄졌으며,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말모이 원고’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에 고서의 판심제(책 제목)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라는 서명을 새겼고, 원고지 위?아래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된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은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술 의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보물 제2086호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29~1942년에 이르는 13년 동안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사)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돼 있다. 특히 개인 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로서,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발굴해 함께 지정하게 됐다.

‘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수정·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가 1945년 9월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돼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큰 사전’(6권)이 완성되는 계기가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지만,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들 뿐 아니라 전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이 담겨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29년 10월31일 이념을 망라해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결성해 사전편찬 사업이 시작됐고, 영친왕이 후원금 1000원(현재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했으며, 각지의 민초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 맞선 범국민적 움직임이 밑거름이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로서,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실체이므로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상징성이 있다.

보물 제2087호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은 정조(재위 1776~1800)의 비 효의왕후 김씨(1753~1821)가 조카 김종선(1766~1810)에게 ‘한서’의 ‘만석군석분’과 ‘신당서’의 ‘곽자의열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 내용을 1794년(정조 18) 필사한 한글 어필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여닫이 뚜껑의 책갑에 보관됐고 ‘곤전어필’이라고 단정한 해서로 쓰인 제목,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필사한 본문, 효의왕후 발문, 왕후의 사촌오빠 김기후(1747∼1830)의 발문 순으로 구성됐다.

이 한글 어필은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한글흘림체의 범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제되고 수준 높은 서풍을 보여준다.

특히 왕후가 역사서의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며 당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국문학적, 서예사적, 역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작 시기와 배경, 서예가가 분명해 조선시대 한글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 측은 “특히 근대시기 한글유산 2종은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우리말을 지켜낸 국민적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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