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명예의 전당’ 헌정 영예… ‘최초’ 수식어 따라다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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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과학기술유공자’ 9명 중 3명 생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과학기술 연구와 산업기술 발전의 초석을 닦은 과학기술인 9명을 2020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유공자에게는 대통령 명의 증서가 수여되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다. 생존해 있는 과학기술인은 물론이고 작고했지만 공이 뚜렷한 과학기술인도 선정된다. 올해 선정자 9명 가운데 3명이 생존해 있다.

○국내 생명공학의 개척자 한문희


“1970년대 국내에서 ‘생명공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을 겁니다. 생명공학 분야를 개척했다는 자부심을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모체가 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 초대 소장을 지낸 한문희 박사(86)는 1974년 미국에서 귀국해 해외 유치 과학자로 KIST에 근무하면서 불모지였던 생명공학 분야를 일궜다.

당시 설탕을 만드는 원당 값이 많이 뛰었는데, 한국은 원당을 100%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그는 “설탕보다 싸고 달콤한 감미료인 이성화당을 합성하는 데 성공해 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또 의약원료로 가장 많이 수입하던 항결핵제(리팜피신)를 국산화할 수 있는 ‘리파마이신’을 개발해 유한화학에 생산기술을 이전했다. 한 박사는 “유한화학은 유한양행과 KIST가 합작해 설립한 지금의 조인트벤처에 해당한다”며 “국내 바이오벤처 1호격”이라고 했다.

1966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출연연으로 설립된 KIST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KIST 연구원은 과학기술인에게는 ‘최고의 대우’와 ‘최고 명예’의 상징이었다. 한 박사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보람이 컸다”고 회상했다.

퇴임 후 2000년에는 단백질 칩과 프로테오믹스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를 창업했다. 이듬해에는 한국바이오벤처협회를 창립해 바이오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다졌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금도 새로운 연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타민D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이의 관계를 의학계와 함께 조사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환경과 과학정책 아우른 ‘여성 1호’ 김명자


“2만3000여 통의 편지를 직접 써 보냈어요. 10여 년간 꿈쩍도 안 한 낙동강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려면 그 정도 정성은 쏟아야 했죠. 결국 2001년 낙동강을 포함해 금강, 영산강·섬진강 수계의 3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3년 8개월 동안 환경부 장관을 지내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명자 전 장관(76)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환경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10개월 동안 치과 치료에만 매달렸다는 그는 “‘이를 악물고 일한다’는 말처럼 무의식중에 이를 악물고 일했더라”고 회상했다.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환경정책에 눈을 돌린 계기는 출산이었다. 화학자이자 자녀를 키우는 엄마에게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은 민감하게 다가왔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환경화학적 관점에서 1993년 ‘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이라는 책을 펴냈다.

김영삼 정부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을 시작으로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장관, 17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는 동안 그는 늘 ‘여성 1호’였다. 올해 6월까지 3년간 회장을 맡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도 1966년 설립 이래 첫 여성 회장이었다.

김 전 장관은 “과학기술은 국가 사회 발전의 기반”이라며 “실험실 바깥에 머물던 내게 평생 신명나게 일할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해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열공학 터전 닦은 스승 노승탁


“서울대 퇴임을 계기로 그간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열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국제열물질전달저널’ 2009년 5월호에는 ‘노승탁 교수의 65세 생일을 축하하며’라는 제목의 두 페이지 기념사가 실렸다. 국제학술지에 퇴임사가 별도로 실리는 일은 흔치 않다. 노 교수(77)는 “쑥스럽고 민망했다”며 “그저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1973년 서울대 기계공학과(현 기계항공공학부)에 부임한 그는 퇴임할 때까지 35년간 석사 113명, 박사 30명을 배출하며 기계공학 후학 양성에 힘썼다. 열역학 전문가인 그가 쓴 ‘(최신)공업열역학’은 1986년 초판을 시작으로 2008년 4판을 인쇄할 만큼 오랫동안 열역학 분야 대표 교재로 꼽혔다.

열역학을 이용해 산업 문제 해결에도 기여했다. 1989년 몬트리올의정서가 발효되며 오존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CFC)를 더는 냉매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친환경 신냉매의 물성을 재빨리 시험해 자동차 에어컨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도왔다. 열병합발전소나 복합화력발전소의 열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건도 알아냈다. 최근 에너지 분야 기술 화두인 연료전지발전의 기초연구를 진행해 일찌감치 터를 닦았다. 최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영하 70도의 콜드체인(저온 유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에 대해 그는 “경제성만 담보된다면 국내 냉동 기술 수준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명예의 전당#2020과학기술유공자#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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