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가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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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킴 닐슨 지음·김승섭 옮김/360쪽·1만8000원·동아시아

1819년 노예선 ‘르 로되르’가 아프리카를 떠난 지 15일이 지났을 무렵. 배에는 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전염병인 안염(眼炎)이 돌았다. 노예들의 충혈된 눈을 선원들은 무심코 넘겼고 결국 40명이 시력을 잃었다. 한쪽 눈을 잃은 선장은 맹인이 된 흑인 39명의 다리에 추를 묶고 바다에 던졌다. 상품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파는 것보다 사망보험금을 받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당시 노예무역에선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인격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예에게 장애는 ‘흠결’이자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 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한 부족에서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보완해 줄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한 상태를 장애로 봤다. 책은 이렇게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장애의 개념을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부족 사회가 펼쳐졌던 이 시기, 장애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때로는 노예 자체가 장애로 여겨졌고, 장애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이민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장애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1968년부터 생겨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사회운동을 펼치며 스스로를 정의하길 시도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장애문화가 풍성해지고, 때때로 주류문화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1988년 미국 농인학교인 갈로뎃 대학생들은 ‘농인(聾人)총장’을 요구하며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승리를 쟁취했다.

저자는 헬렌 켈러의 정치 연설을 우연히 접한 뒤 장애역사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장애의 역사#킴 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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