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알파고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필자는 매주 수요일 ‘매불쇼’라는 팟캐스트의 한 코너에서 세계뉴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코너는 한국 언론이 잘 다루지 않는 기사나 이미 다룬 기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번 주 아이템은 한국 언론에서도 언급된 ‘독일판 광화문 시위’였다.

‘독일판 광화문 시위’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8·15 광화문 집회’를 연상케 하는 대규모 시위였다. 독일 경찰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집회를 금지하려고 했으나 베를린 법원에서 집회 허가가 나 그날 수만 명이 모였다. 문제는 시위 참가자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광장에 몰렸다는 점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지금 한국에서와 같이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시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검찰이 처음 시위 금지령을 내렸을 때 극우 성향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은 검찰의 이러한 지시가 독일이 강조해온 자유정신에 반한다고 생각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집회 허가를 받게 됐다.

여기에 핵심적인 허점이 있었다. 재판부가 집회를 허가한 판결문에 따르면 시위자들은 고의로 방역 수칙을 어길 의도가 없으며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한 인원을 배치하는 등 충분한 예방책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위자들은 방역 당국의 조치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어느 정도 지키면서 시위를 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도의 큰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시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지 광화문 집회와 같은 일이 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 사태의 단편적인 부분만 소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 집회의 성격을 극우파 성향의 시위로 이해했다. 시위자들이 들고 있는 깃발들을 보면 극우세력의 구호와 제국주의 시대 독일 국기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회의 성격을 극우 성향의 시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극우 성향이 있는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했을 뿐이다.

독일의 시위는 한국의 광화문 집회처럼 정치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코로나19 감염을 막으려고 방역 당국이 내린 조치들 때문에 벌어진 일에 가깝다. 공공의 목적으로 개인 생활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으로 극좌 성향의 사람이나 중도 성향의 사람들도 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는 내가 직접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과 소셜미디어로 연락해 대화를 나눠본 뒤 내린 결론이다.

이런 결론을 보고 ‘설마 이 외국인 친구가 코로나19 한복판에 벌어진 베를린 사람들의 시위를 옹호하는 건가’라며 우려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당연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무시한 채 이러한 집회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나도 생각한다.

베를린 집회는 다른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21세기 인류의 민주주의 의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 시위에서 드러났다는 점이다.

당연히 방역 당국이 마련한 기준대로 공공 생활을 해야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덕분에 의료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더 큰 손해를 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전염병 확산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렵게 쟁취한 자유가 퇴보할까 걱정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누군가가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판하려면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분명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언제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문제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 어떤 상황이더라도 정부의 정책과 방침에 대해 논의하고 지적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움이 우리의 민주주의 의식을 공격해선 안 된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방역#민주주의#토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