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돈 안 낸 탓, 미군 감축할 것”…방위비에 노골적인 트럼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0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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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독미군의 3분의 1을 감축하는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 “독일이 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군 감축과 방위비 문제가 연계돼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다음 타깃으로 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독미군 감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독일은 채무 불이행(delinquent) 상태로 돈을 내지 않고 있다”며 방위비 문제를 꺼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주독미군 3만6000명 중 기존에 알려진 감축규모(9500명)보다 많은 1만1900명을 감축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직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은 몇 년 동안 돈을 안 내고 있고 낼 생각도 없다”며 “우리가 왜 그 모든 군대를 그 곳에 주둔시켜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이 수년 동안 독일과의 무역과 국방 등 분야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래서 우리가 병력을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채무불이행’이라는 표현을 세 차례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호구(sucker)가 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도 같은 날 오전 브리핑에서 독일의 방위비 지불과 감축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서 국방비를 더 낼 수 있고 내야 한다”고 압박에 가세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이번 감축 결정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러시아 억지 강화와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측면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인한 셈이다.

독일은 주독미군 감축 규모가 예상을 넘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페터 바이어 독일 정부 대서양 관계 조정관은 29일(현지시간) dp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주독미군 감축은 독일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물론 미국의 안보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워싱턴에서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국방부 내 (주독 미군 철수에) 반대자가 많다.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인상’과 ‘해외 주둔 미군 철수’의 연계를 노골화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에도 같은 논리로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이끌던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협상대표는 이날 북극권 조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는 중동 분야를 다뤄오던 여성 외교관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하트 대표가 한국과 실무협의에서 잠정 합의한 13% 인상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던 것을 감안하면 보다 강경한 차기 협상대표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이달 초 방한 과정에서 SMA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을 조율해보려 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SMA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당장은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파리=김윤종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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