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공조 우회하려는 南北 우선론, 워킹그룹까지 흔들 건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어제 서울에 도착해 2박 3일의 방한 일정에 들어갔다. 그의 방한에 맞춰 미 국무부는 북한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한 동맹 간 조율을 강조했다. 반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그제 “(한미가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워킹그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우리 정부가 외교안보라인 개편을 단행하고 남북 대화 재개에 총력을 다짐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 후보자가 대북제재와 관련해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며 ‘창의적 해법’을 강조한 것도 어떡하든 북한과의 대화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발언은 미국과의 워킹그룹 협의를 건너뛰면서 어떻게든 북한을 달래보겠다는 말로 들린다.

북한은 지난달 대북전단을 핑계 삼아 도발에 나서면서 워킹그룹 해체를 요구했다. 워킹그룹은 한미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북제재, 남북협력 등을 조율하는 기구다. 재작년 타미플루 대북 지원을 오래 끌다가 무산된 일도 있지만 20여 차례에 걸쳐 남북 철도·도로 연결 조사 등 협력사업을 일괄 허가하는 ‘패스트 트랙’ 역할을 했다. 북한이 진정 노리는 것은 한미 공조체제의 핵심 틀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다.

비건 부장관 방한을 앞두고 북한은 외무성 제1부상에 이어 미국국장을 내세워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거듭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우리 정부의 중재 의지에 대해선 ‘헷뜬(정신 나간) 소리’라면서도 “정 소원이라면 해보라”라고 했다. 미국의 대폭 양보를 얻어낼 판을 깔라는 요구인 것이다.

비핵화와 제재 문제를 두고 남북미의 접근법은 점점 ‘3자3색(三者三色)’으로 갈라지는 양상이다. 북-미 대화 재개도 필요하지만 워킹그룹 역할 조정을 둘러싸고 한미 간 논란이 커지면 대북 공조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 남북 협력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론 미국엔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고, 북한엔 도발하면 보상받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