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박물관 소장 소형 총통 300점 중 16점 가짜일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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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보고서 발간
2년간 14~16세기 소장품 대상… X선 형광분석 기법으로 전수조사
일부서 당시 없던 아연성분 나와… 총통 주조때 사용 틀 모양도 밝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을 컴퓨터단층촬영(CT)한 모습. 총신 내부에 주조 시 안쪽 틀을 받쳐 고정했던 ‘M’자 모양의 철제 받침쇠 ‘형지(型持)’가 보인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을 컴퓨터단층촬영(CT)한 모습. 총신 내부에 주조 시 안쪽 틀을 받쳐 고정했던 ‘M’자 모양의 철제 받침쇠 ‘형지(型持)’가 보인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전국 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말∼조선 중기 소형 총통(銃筒) 300점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16점은 근래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의 허일권 김해솔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간된 보고서 ‘조선무기 조사연구 보고서1: 소형화약무기’에 게재한 논고 ‘국내 소형 총통류의 형태 변화와 제작 기술’에서 이같이 밝혔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진주박물관은 2년여에 걸쳐 14∼16세기 소형 총통과 부속품을 조사하고 이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육군박물관을 비롯해 19개 기관이 소장한 총통 800여 점을 전수 조사했고, 그 가운데 293점을 X선 형광 분석 기법으로 조사했다. 그중 약 5%에 이르는 유물이 위조품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승자총통(勝字銃筒)을 컴퓨터단층촬영(CT)한 모습(아래 사진). 총신의 내부 구경이 거의 일정하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승자총통(勝字銃筒)을 컴퓨터단층촬영(CT)한 모습(아래 사진). 총신의 내부 구경이 거의 일정하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보고서에 따르면 가짜 판별의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은 총통 재료인 청동합금 내 아연 성분이다. 청동 총통은 구리와 주석, 납이 섞인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분석 결과 세 금속에 아연이 더해진 총통이 15점, 구리와 아연의 합금 재질이 1점 확인됐다.

아연은 다른 금속에 비해 제련하기 어려워 한반도에선 17세기 이후에야 본격 제련했다. 따라서 14∼16세기 제작된 소형 총통에는 아연이 없어야 정상. 아연 성분이 나온 총통은 표면 색상과 형태도 인위적으로 부식시킨 것처럼 독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일권 학예연구사는 “아연합금 총통은 위작품으로 의심한다”며 “과학적 분석과 명문(銘文) 판독을 종합해 진위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어느 박물관이 소장한 총통에서 아연 성분이 발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허 연구사는 “아연합금 총통 16점 가운데 지정문화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위조 총통’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1996년에는 국보 274호 ‘별황자총통’이 가짜로 드러났다. 1992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포함한 일당이 공모해 현대에 위조한 총통을 경남 통영시 한산면 문어포 앞바다에서 인양했다고 하면서 조선시대 유물이라고 발표했던 것. 이 가짜 총통도 아연 성분이 상당히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조선 중기 이후 소형 총통의 진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도 제시했다. 바로 총통 속에 숨은 ‘형지(型持)’다. 구멍이 뚫린 총신을 주조하려면 쇳물을 담는 바깥 틀뿐 아니라 긴 원통 막대 모양의 안쪽 틀도 필요하다. 주조 뒤 제거하면 빈 공간이 되는 이 안쪽 틀이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정밀하게 고정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이 안쪽 틀을 고정하는 철제 받침쇠가 형지다. 형지는 나중에 틀을 제거한 뒤에도 총통 속에 남게 된다.

연구진은 소형 총통을 컴퓨터단층촬영(CT) 한 결과 총신이 긴 조선 중기 소형 총통의 내부에서 ‘W’ ‘M’ ‘L’자 모습의 형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지의 형태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데 조사 대상 가운데 10여 점에서는 형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조선 중기의 기술력으로 형지 없이 주형을 설계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형지가 없는 총통은 표면의 부식 상태도 어색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소형 총통에는 격목을 넣는 ‘격목통’이 없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격목은 화약이 폭발해 발사체를 밀어내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사체를 넣기 전 밀어 넣는 나무토막이다. 연구진이 CT와 내시경으로 조사해 보니 기존 문헌 기록과는 달리 총열과 약실 사이에 격목통이라고 볼 만한 구경의 변화가 없었다.

보고서는 “소형 총통은 출토된 것보다 전래품이 많아 진위가 논란이었는데, 이번 조사로 과학적 기준이 마련되길 바란다”면서 “대형 화포도 조사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국 박물관#소형 총통#x선 형광 분석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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