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남 압박으로 ‘새판’ 짜려 하나[동아시론/김수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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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적대 행위, 경제난-對南 불만 겹쳐… 북한 주도 새 남북관계 만들겠단 의도
韓美 공조 바탕으로 냉철하게 대응해야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촉발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대남 비난과 압박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14일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남북관계의 ‘결별’까지 위협하고 나섰다. 급기야 16일에는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단행하였다. 북한이 대남 압박의 빌미로 삼고 있는 명분들은 새롭지 않다. 전단 살포를 빌미로 북한이 이 시점에서 돌연 전면적인 대남 압박에 나선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일련의 조선노동당 회의 개최 장면을 통해 북한의 대남 압박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작년 12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장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이 설정한 시점인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셈범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노동당 회의를 활용하여 투쟁 노선으로 ‘정면돌파전’을 제시하였다. 대북 제재의 영향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버티기를 통한 내핍 전략을 ‘새로운 길’로 포장한 것이다.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의 내핍 전략으로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는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1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는 코로나19가 북한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 장면이다. 이례적으로 정치국 회의 제1호 안건이 코로나19에 대한 국가적 대책의 수립이었다. 그만큼 코로나19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대북 제재에 따른 내핍 전략과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대내적 불만을 외부로 향하게 하는 기폭제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군중집회와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동원하여 연일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다. 북한은 계급교양을 부쩍 강조하는 등 최근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대남 적개심은 사회 통제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사회를 통제하려는 의도만으로 북한의 대남 압박을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본질적으로 북한의 대남 압박은 자신들이 봉착한 난관을 극복하는 데 현재의 대북정책이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최종 결단의 결과로 보인다. 남북 합의 이후 남북 협력의 실질적 성과에 대한 최종 계산의 결과물이 전단 살포를 기폭제로 하여 대남 압박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계산의 이면에는 ‘민족 공조’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남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당사자로서 좌고우면하지 말고 민족 공조에 나서라고 주문하여 왔다. 우리는 세계와 상호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남북문제를 풀어야 하는 ‘열린 민족 공조’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이 요구하는 민족 공조는 폐쇄적인 ‘닫힌 민족 공조’다. 7일 ‘달나라 타령’이라는 제목의 ‘우리민족끼리’ 논설에서 ‘선순환 관계’에 대해 ‘악순환 관계’라고 비난하였듯이 민족 공조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좁혀지기 쉽지 않다.

이번 ‘대적 사업’을 김 부부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여정은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의 자격으로 ‘김 위원장, 당과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지휘’하고 있다. 전면에 나서 대적 사업을 주도하는 김 부부장의 위상을 고려할 때 최근 일련의 행태는 단순한 대남 압박을 넘어 남북관계를 크게 흔들어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했듯이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판’에 부응하는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 부부장이 대남 대적 사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당분간 남북관계의 냉각기 및 정세 불안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4일 담화에서 예고한 대로 기존의 남북 합의를 파기하는 대남 적대적 조치들이 이미 취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정면돌파의 내핍 전략과 사회 통제는 북한이 처한 난관을 뚫고 나갈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남북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대남 압박이 새판을 짜기 위한 의도라면 역설적으로 남북 정상회담 등 하향식(top down) 협상의 여지는 있다. 다만 단기간에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조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하게 한반도 정세를 관리해나가야 한다. 김대중(DJ) 정부 ‘무력도발 불용’ 원칙의 사례에서 보듯이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 아래 북한의 새판 짜기(?)에 냉철하게 대처하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北적대 행위#새 남북관계#대북 전단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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