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겪으면서 한국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게 확인됐다.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부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1.4%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라는 자산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 “한국은 덴마크급 국가”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0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연사로 나선 바네르지-뒤플로 교수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바네르지 교수는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사실을 설명하고 정보를 공개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이는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한국은 북유럽의 덴마크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두 교수는 평가했다. 뒤플로 교수는 “현 시점에서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국가가 굉장히 많다”며 “하지만 한국은 국가·정부에 대한 공유된 신뢰가 있었고, 이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경험과 시스템을 의미하는 ‘K방역’의 성공은 정부의 설명과 대처, 뒤따라올 보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신뢰를 확인한 정부는 경제 구조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회를 구축할 기회를 얻게 된다. 바네르지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소득 불평등 문제 해결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신뢰 없는 정부는 이를 쉽게 다룰 수 없다”며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심각하지 않은 데다 정부 신뢰가 있어 이 문제를 쉽게 다루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바네르지 교수는 “정치인은 경제학자보다도 신뢰를 못 받는 직업군”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확인된 정부에 대한 신뢰만을 믿고 정책을 세심하게 펼치지 않으면 국민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는 의미다.
○ ‘뉴 키즈 온 더 블록’ 국가들의 파트너 될 것
바네르지-뒤플로 교수는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글로벌 리더가 될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바네르지 교수는 “한국은 모범적으로 보건의료의 위기를 극복했다. 한국이야말로 빈곤, 의료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개발도상국, 빈민국가에 모델을 제시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며 “놀라운 경제 성장 경험도 있는 만큼 많은 국가들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뒤플로 교수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제에 과거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국가들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신참자, 새내기)처럼 혜성같이 등장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에 한국의 놀라운 성장 노하우를 공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이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이날 대담을 진행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중국 의존도에 대한 각국의 고민을 지적하자 뒤플로 교수는 “중국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이 늘어날 것이고 한국은 중국과 경쟁을 벌이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있다. 이어 “한국이 갖고 있는 전문 역량과 노하우를 공유한다면 다른 국가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고민하는 국가들에 한국이 대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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