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IT/의학

수천만 원짜리 몸값도…천덕꾸러기? 인간 살리는 생쥐!

입력 2019-12-27 16:17업데이트 2019-12-27 19:2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17일 대전 유성구 대학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동물센터 1층 실험실. 33㎡ 남짓한 공간 한구석에 작은 플라스틱 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통 안에는 작은 생명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를 잡아 손등에 올려놓으니 고개를 쫑긋 들어 올린 채 손 주변을 맴돌았다. 이들은 신약(新藥)개발 연구용 생쥐다. 일반 쥐와는 달리 몸무게가 20g 안팎(8~10주 성체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덕꾸러기로 취급 받기 일쑤인 일반 쥐와 달리 몸값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장수일 KAIST 연구원(45)은 실험실에서 생쥐들과 365일을 함께 지낸다. 그는 실험용 생쥐를 대량으로 증식시키는 체외수정 전문가다. 내년은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다. 그에게 소감을 묻자 “쥐에 대한 편견을 버려 달라”는 주문부터 쏟아냈다. 그는 “그동안 우리에게 혐오스럽거나 병을 옮기는 존재로만 인식돼 왔던 쥐가 이제는 인간과 공생하는 관계가 됐다”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 같은 존재로 생명과학, 의과학 연구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인간과 쥐는 유전자가 99% 유사해 신약을 개발할 때 필수적인 데다 생쥐의 단백질을 연구하면 알츠하이머, 당뇨, 고지혈증, 암 등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수일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이 실험용 생쥐를 손에 올려놓은 채 포즈를 취했다. 그는 “쥐는 그동안 혐오스러운 동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암, 당뇨병 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단백질 규명 및 기작(생물의 생리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기본 원리) 연구를 위해 사용되는 실험용 생쥐는 ‘B(블랙)6’라고 부른다. 생쥐는 암수가 교미를 하면 보통 5~12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체외수정을 이용하면 200~400마리를 만들 수 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생쥐가 올해에만 수만 마리다. 실험용 생쥐 연구는 서울대 연세대 등 다른 대학과 협업하는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이를 위해 실험동물센터에 실험용 생쥐 서식을 위한 별도의 대형 공간을 만들고, 센터 직원 30여 명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쥐의 청정화(무균화)를 유지하기 위해 실내온도는 21~23도, 습도는 48~68%로 제어한다.

장 연구원은 2013년부터 매년 500회 이상 생쥐 체외수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모두 7000회 가까이 시도했는데 성공은 3300회 정도다. 그는 “생쥐의 수명은 1, 2년에 불과하지만 이들 생쥐의 정자를 다시 활용할 수 있어 무한복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명을 다한 생쥐는 안락사를 시킨 뒤 전문업체에 의뢰해 화장한다.

장 연구원은 어려서부터 동물과 함께 노는 걸 좋아했다. 고향인 강원 화천에서 개를 기르며 동물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외갓집에서 키우는 소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아지 한 마리가 시름시름 앓다 숨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동물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2012년 건양대에서 비임상학 석사학위를 받고 충남대 수의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한상섭 건양대 바이오비임상대학원장, 현병화 전 오송실험동물센터장, 유욱준 KAIST 의과학대학원 명예교수 등을 사사(師事)하면서 실험용 생쥐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외수정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는 “은사들에게서 ‘생쥐가 인간을 살린다’는 인생의 가르침을 배웠다”고 했다.

장 연구원은 실험용 생쥐와 함께한 2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체외수정에 관심이 있는 후배를 양성할 계획이다.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밑그림도 그려 놓았다. 정년퇴직한 뒤 바이오 클러스터 예정지인 인천 송도국제자유도시에 신약개발 연구용 생쥐 체외수정 시설 및 실험실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실험용 생쥐는 의학계에서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고부가가치 동물로 자리 잡았다”며 “2020년에는 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가 황금돼지의 해였다면 내년 경자년은 ‘흰쥐’의 해다. 일반적으로 대중이 갖고 있는 쥐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흰쥐는 우두머리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내년에 실험실의 생쥐들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대전=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