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감독 웃게한 팬들의 응원[현장에서/이원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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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지휘하는 유상철 감독. 뉴시스
경기를 지휘하는 유상철 감독. 뉴시스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우리에게 준 소중한 기적들, 이제는 다시 그대를 찾을 차례.”

인천과 상주의 프로축구 K리그1 경기가 열린 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비가 쏟아지고 바람까지 강하게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평소보다 많은 1만1000여 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췌장암 4기로 투병 중인 유상철 인천 감독(48)을 응원하기 위해 축구팬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 채 끝까지 경기장을 지켰다.

경기장 곳곳에는 유 감독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수십 명의 상주 방문 응원단도 상대 팀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구를 내걸었다. 충남 홍성군체육회에서도 응원 플래카드를 보내왔다. 홍성은 인천이 6월에 전지훈련을 했던 곳이다.

유 감독을 응원하는 퍼포먼스는 전국에서 이어졌다. 23일 서울, 춘천, 울산, 안양에서 열린 경기에 이어 이날도 인천, 성남, 제주에서 모든 관중이 시작 직후 30초간 유 감독의 이름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일본 J리그 요코하마의 팬들은 23일 마쓰모토와 치른 방문경기에서 응원석에 ‘할 수 있다 유상철 형’이라고 한글로 적은 현수막을 내걸고 유상철의 이름을 외쳤다. 유 감독은 선수 시절 요코하마에서 활약했다.

유 감독은 경기에 앞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팬들을 위해 1승을 거두라”고 강조했다. 경기 내내 선 채로 비를 맞으며 승리를 기원한 유 감독의 마음을 알았을까. 인천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문창진(26)과 케힌데(25)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화끈하게 이겼다. 5월에 부임한 후 안방에서 처음 이긴 유 감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린 인천은 30일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부 리그에 남는다.

첫 골을 넣은 문창진은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이번 경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적장인 김태완 상주 감독은 “그 간절함이 인천을 이기게 한 것 같다. 감동적인 경기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경기 뒤 유 감독은 찬비를 맞아가며 경기를 지휘한 것에 대해 묻자 “선수들도 맞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린 후 “응원 메시지를 받고 기사를 볼 때마다 힘이 난다. 팬들을 위해, 같이 투병하는 환자들을 위해 반드시 완쾌하겠다”고 강조했던 유 감독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꼭 일어나겠다고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관중석의 한 팬은 유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때 입었던 유니폼을 흔들며 열띤 응원을 보냈다. 당시 주역으로 활약하던 유 감독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희망을 전하던 그의 곁에는 이제 많은 팬들이 지키고 있다. 병마와 싸우고 있어도 유 감독은 결코 외롭지 않아 보였다.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takeoff@donga.com
#프로축구 k리그1#유상철 감독#암투병#췌장암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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