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신이시여” 눈물과 탄식… 850년 프랑스 역사가 불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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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간절한 기도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여성이 불길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며 묵주를 손에 쥔 채 안타까워하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간절한 기도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여성이 불길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며 묵주를 손에 쥔 채 안타까워하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오, 신이시여….”

15일 오후 7시 50분(한국 시간 16일 오전 2시 50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93m 높이 첨탑 끝 부분이 불길 속으로 뚝 떨어졌다. 센 강변에서 화재 현장을 바라보던 파리 시민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상당수는 눈물을 흘렸다. 연 1300만 명 관광객이 찾는 850년 역사의 인류 문화유산은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 화마와 싸운 9시간

첫 화재 경보가 울린 시각은 15일 오후 6시 20분(한국 시간 16일 오전 1시 20분). 23분 후 다시 경보가 울리면서 본격적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앙드레 피노 대성당 언론 담당자는 현지 언론에 “경고음이 울린 뒤 성당의 높은 곳에서 회색빛 연기구름을 봤다”고 했다. 저녁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약 500명에 이르는 소방관이 18개의 대형 물 호스를 사용해 물을 뿌렸다. 소방관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큰 불길은 발화 9시간이 지난 16일 오전 3시 30분경 잡혔고 15시간 만인 오전 9시 30분경 완전 진화됐다. 진화 후 로이터 등이 공개한 사진에 드러난 성당 내부 모습은 참혹했다. 천장은 폭격을 당한 듯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벽면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장클로드 갈레 파리 소방청장은 “전면부의 두 탑은 불길을 피했지만 대성당 지붕의 3분의 2는 붕괴됐다”고 했다.

프랑크 리에스테 문화부 장관은 “성당의 또 다른 상징물인 대형 장미 모양 스테인드글라스 3개는 안전하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불타버린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우리의 성당을 다시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탄내가 코를 찔렀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그는 16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고, 내각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성당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 문화유산재단은 성당 재건을 위한 국가 모금에 돌입했고 지방자치단체, 기업, 개인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 진화를 어렵게 한 비계와 좁은 도로

프랑스 검경은 테러나 방화가 아닌 실화(失火)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6일 대성당 보수 작업을 하던 5개 회사의 인부 탐문 및 현장 조사를 시작한 레미 헤이츠 검사는 “고의로 불을 지른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르피가로 등 현지 언론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첨탑 보수 공사를 위해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비계(飛階) 쪽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비계 아래의 핵심 구조물 ‘아치형 나무보’는 12세기에 벌목한 참나무로 만들어져 ‘숲(The Forest)’으로도 불린다. 건물 손상을 우려해 철재가 아닌 나무 비계를 쓴 데다 오래돼 건조해진 보가 불쏘시개가 되어 화재를 키웠다는 의미다. 로랑 뉘네즈 내무부 차관은 “건물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아치형 지붕과 북쪽 상층부에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했다.

파리 특유의 좁은 도로도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다. 물을 댈 소방용 호스도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신이 도운 일이란 평가가 나온다.

○ “프랑스가 울고 있다”

15일 밤 시청 광장에서 불타는 대성당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민 티보 씨(25)와 앙젤라 씨(23)는 기자에게 “너무 슬퍼 두 시간째 이렇게 서 있다”며 “모든 프랑스인은 어려서부터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배운다”고 했다. 시민 오베이 씨는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건물이 사라지다니 정말 슬픈 저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시테섬을 비롯한 센강의 섬 2곳에는 비극적 현장을 보려는 인파가 몰려들어 주변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퐁뇌프 다리에 서 있던 시민들은 화재 초기에 구조 소방차가 오자 박수와 환호를 지르며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이번 비극은 다음 주말 부활절 직전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리는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해 침통함을 더했다. 시민들이 찬송가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는 모습을 담은 트위터 동영상은 조회수가 700만 회를 넘었다. 현장에서 마주친 시민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큰 울림을 남겼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최지선 기자
#노트르담 대성당#프랑스#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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