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우려되는 아베 총리의 몽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에게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원소 세슘(Cs-137)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태평양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반감기가 30년이나 되는 세슘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의 오염은 8년이 흐른 지금도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우리 정부는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실시했습니다. 2013년 9월부터는 더욱 강화된 임시특별조치를 시행합니다. ①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 금지 ②일본산 식품에서 세슘 미량 검출 시 추가 17개 핵종 검사증명서 요구 ③국내외 식품에 대한 세슘 기준 강화 등입니다.

2015년 5월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조치 중 ①과 ②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WTO는 2018년 2월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같은 해 4월 우리 정부는 1심 패널 판정에 불복해 WTO에 상소를 제기했습니다. 올해 4월 11일 WTO 상소기구는 예상을 깨고 수입제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정했습니다. 1심을 뒤집고 한국 손을 들어 준 최종심입니다. 식품 위생 검역과 관련한 분쟁에서 1심이 뒤집힌 최초의 사례입니다.

일본 정부는 WTO 판결의 의미를 폄하하는가 하면 상소기구의 정원이 7명인데 3명만 심리에 참여했다는 점을 들어 WTO 시스템에 딴지를 걸고 나섰습니다. 미국과 연대해 WTO 개혁을 이끌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WTO가 설립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상소기구에서는 무작위로 3명의 위원을 배정해 심리를 진행했고 이에 대해 일본은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국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국제 분쟁 해결 제도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꼴사나운 일입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19개국에서 취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내심 한국과의 분쟁에서 승소해 19개국의 조치를 일거에 풀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 계산부터 일그러졌으니 난처한 모양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사진)는 한술 더 떠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아베는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국내 정치적 요인을 꼽습니다. 최근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장관이 자민당 다카하시 히나코 의원 후원모임에서 ‘부흥보다 정치가 중요하다’며 실언했습니다. ‘부흥’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의 복구를 의미하고 정치는 자민당 다카하시 의원을 의미합니다. 민심이 들끓자 아베 총리는 사쿠라다 장관을 당일 경질했습니다. 아베는 정치적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WTO 판결마저 패했으니 제법 짜증이 났을 겁니다. 한일 양국 관계의 경색이 우려되지만 아베의 몽니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아베 총리#후쿠시마 원전 사고#방사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