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연설때 다양한 인종과 무대에… 트럼프의 설득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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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신간 ‘Pre-suasion’ 출간
‘설득의 심리학’ 저자 치알디니 교수

길을 걷다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다고 하자. 전화번호를 받고 싶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을 붙여야 자연스러울까’ ‘어떻게 다가가야 나에게 호감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어디에서 말을 걸어야 하나’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치알디니(사진)에 따르면 처음 보는 이성에게 말을 걸 때 말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장소와 맥락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이런 실험이 진행됐다. 다양한 가게가 있는 쇼핑몰 안에서 남성이 처음 보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은행, 빵가게, 옷가게 앞에서 시도했을 때보다 꽃가게 앞에서 시도했을 때 전화번호를 받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꽃은 로맨스를 연상시킨다. 단지 꽃가게 앞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여성의 머릿속에는 전화번호를 타인에게 넘길 때 생기는 걱정보다 혹시나 모를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는 것이 치알디니의 설명이다.

치알디니는 심리학과 경제학, 경영학을 접목한 행동과학 분야의 대가로 꼽히며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본인에 따르면 1984년 출간 이래 전 세계적으로 300만 권 이상, 한국에서만도 75만 권 이상 팔렸다고 한다. 그는 72세지만 여전히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강의와 연구, 저술활동을 한다.

두 번째 저서인 ‘Pre-suasion’의 한국 출간을 앞두고 있는 치알디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44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 소개한다.

―‘설득의 심리학’의 소재는 어떻게 얻은 것인가

“내가 설득에 대한 책을 쓰기 전에도 이미 세상에는 생존을 위해 설득의 프로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세일즈맨, 마케터, 광고인, 리크루터, 기부금 모집인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설득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노하우를 배워 보고자 신분을 숨긴 채 자동차영업과 보험영업인 교육을 받았고 마케팅 회사와 자선단체에서도 일했다. 이렇게 해서 설득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을 발견해 보편적인 법칙들을 뽑아냈다.”

치알디니는 이 책에서 설득의 6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상호성의 원칙’은 사람이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본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공짜 화장품 샘플을 나눠주면 구매율이 올라가고, 꽃이나 배지를 나눠주면 자선단체 모금이 쉬워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30여 년 만에 신간 ‘Pre-suasion’을 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사람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하는 행동(pre-suasion)이 그 메시지 자체만큼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어느 토요일 아침의 일이었다. 집에 누가 찾아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을 돕는 단체에서 일한다며 돈을 기부해달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실제로 그런 단체에서 일한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에 그런 프로그램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에게 상당히 많은 돈을 기부했다. 이상한 일 아닌가.

―왜 그랬는가.

“남자가 떠나고 나서 내가 왜 많은 돈을 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4세짜리 딸을 데려왔다. 나는 그 귀여운 꼬마가 아빠 다리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봤다. 그러고 나서 그 남자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뭔가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니 내 두뇌가 일관성을 느낀 것이다. 그 남자가 그런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딸을 데려오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됐든 내 머릿속에서는 아빠와 함께 온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줘야겠다는 동정심이 동네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설득법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보니 기업뿐 아니라 선거를 앞둔 정치인도 치알디니를 찾는다. 유권자를 어떻게 설득할지를 묻기 위해서다. 그는 2012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 자문단에서 일했고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 캠프를 도왔다. 하지만 치알디니는 “그들이 내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클린턴 캠프를 완곡하게 비판했다. 오히려 상대편이었던 트럼프 캠프의 전략을 칭찬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많은 사람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사람들이 트럼프의 설득 기술에 넘어가버린 것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변화를 원했고 트럼프가 그 변화를 가져올 후보였다. 이런 점에서는 이성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사용한 트릭들도 있었다. 보통 정치인이 연설이나 유세를 할 때는 스스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도록 꾸민다. 그런데 트럼프는 연설을 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뒤편에 다양한 인종과 외모의 사람들을 데려다놓는다. 그리고 TV 카메라맨에게 ‘여기 모인 사람들을 쭉 둘러 보여주세요’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보고 있는 관중의 모습을 TV 시청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전 설득 작업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미리 시청자 설득에 들어간다.”

―당신은 정통 심리학자인데, 이렇게 학술서가 아닌 대중서적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의 심리학자들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책을 썼다. 학계에서만 돌려보는 책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자들이 하는 연구는 대부분 시민이 내는 세금과 기부금, 학비 등으로 이뤄진 것이다. 시민은 자신의 돈으로 실행된 연구의 결과를 알 권리가 있고, 학자는 일반 시민에게 연구 결과를 설명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요즘은 많은 학자가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책을 펴낸다. 이제 학자들도 깨닫고 있다. 진정으로 과학에 충실한 책을 쓴다면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가치 있는 통찰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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