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로 ‘추억 소환’… 특화거리 만든뒤 방문객 20% 증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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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골목시장]<3> 부산 서구 충무동시장

고갈비 특화 시장으로 꾸며진 부산 충무동골목시장. 같은 모양의 지붕을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가게들이 고갈비와 파전을 파는 
곳들이다. 최근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야외 좌석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저녁이 되면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야외 좌석에 앉아 고갈비를 즐기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고갈비 특화 시장으로 꾸며진 부산 충무동골목시장. 같은 모양의 지붕을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가게들이 고갈비와 파전을 파는 곳들이다. 최근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야외 좌석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저녁이 되면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야외 좌석에 앉아 고갈비를 즐기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고등어는 국민 생선으로 불린다. 서민들이 차려내는 저녁 밥상에 오르는 단골 메뉴다. 다른 생선보다 통통한 살을 크게 떼어내 물면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서부터 포만감을 가져다준다. 구이라면 짭조름한 맛이 밥숟가락을 쉬이 부른다.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사랑하지만 과거에는 그 사랑이 더 진했다.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값비싼 육류는 아니지만 고기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아님 정말 고기 맛이 났던 걸까. 언젠가부터 고등어구이는 ‘고갈비’로 불리고 있다.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갈비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곳은 부산이다. 고갈비를 우리 지역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부산이 원조가 맞을 듯하다. 구체적으로는 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석쇠에 구워 내는 게 고갈비란다. 기름기가 많아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모습이 돼지갈비와 비슷해 고갈비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있다. 부산 토박이 정창준 씨(69)는 “별다른 뜻이 있을까. 그냥 갈비 먹는 기분이나 내자고 그랬겠지”라며 웃었다. 부산의 고등어 사랑은 유별나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개념조차 생소한 ‘시어(市魚)’가 있는데 다름 아닌 고등어다. 오래전부터 서민들이 많이 오가던 부산 골목에는 고등어구이 집이 몇 개씩 있었다. 지갑이 얇았던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대학생들은 친구끼리 삼삼오오 고등어구이에 소주나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부산 서구 충무동2가·3가 일대도 고갈비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골목 중 하나였다. 고갈비 집을 비롯해 파전, 아나고로 불린 붕장어 등 서민 안주를 파는 식당과 노점 그리고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이 골목을 채운 이곳은 예전부터 ‘충무동골목시장’으로 불렸다. 권용달 충무동골목시장 상인회장은 “일제강점기부터 골목마다 상점들이 있었고 6·25전쟁 때 피란 온 사람들도 자리를 잡으며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많은 전통시장이 그러하듯 충무동골목시장도 1990년대 중반까지 번성했다가 2000년대 들어 쇠락했다.

충무동골목시장 대표 먹거리인 고갈비(왼쪽)와 파전. 고갈비 한 마리에 7000원, 파전은 5000원으로 즐길 수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충무동골목시장 대표 먹거리인 고갈비(왼쪽)와 파전. 고갈비 한 마리에 7000원, 파전은 5000원으로 즐길 수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충무동골목시장이 부활을 위해 내세운 것은 고갈비다.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킨 상인들이 가장 많이 팔던 음식 중 하나다. 국내 고등어의 80% 이상을 유통하는 ‘부산 공동어시장’이 근처에 있어 싱싱한 고등어를 공급하기 수월한 지리적 이점도 고려됐다. 상인들은 고갈비를 통해 골목시장이 사람들로 다시 북적이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충무동골목시장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와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진행한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그러면서 고갈비를 테마로 시장을 탈바꿈시켰다. 충무동골목시장은 올해 2월 고갈비 테마 거리 선포식을 여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10일 찾은 충무동골목시장 메인 거리에는 고갈비 전문 음식점 7곳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같은 모양의 검은색 지붕들이 붙어 있어 통일된 느낌을 줬다. 가게 이름이 적힌 검은색 판들 역시 모양과 높이가 동일했다. 검은 판 곳곳에는 고등어를 형상화해 디자인한 캐릭터가 붙어 있었다. 고갈비 거리 조성을 위해 디자인업체인 ‘디자인부산’에 의뢰해 만든 캐릭터인 ‘꼬등어’다. 디자인부산은 꼬등어를 활용한 문구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시장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일본의 특색 있는 전통시장들이 많이 선보인 전략이다. 시장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젊은층에게 시장이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꼬등어는 시장 입구에 세워진 대형 입간판 꼭대기에도 있다. 꼬등어 옆에 새겨진 시장 이름 앞에 쓰인 문구는 ‘그때 그 시절’이다. 충무동골목시장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갈비 전문 음식점 중 한 곳인 ‘등대파전’의 양정부 씨(77)는 194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젊어서는 자갈치시장에서 일했다. 원양어선 뱃사람들이 먹을 고기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일이었다. 충무동골목시장으로 온 건 1988년이다. 그때 시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장사가 꽤 잘됐다. 현재 메인 거리인 고갈비 특화 거리 가운데는 노점들이 가득 찼다. 당시에는 시장 상인 수가 700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150명 정도에 불과하다. 시장이 번성했던 시절에 양 씨는 고갈비보다 단가가 비싼 회를 팔았다. 그래도 가게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사실 이곳은 과거 ‘완월동’이라고 불렸던 부산의 대표적인 환락가와 가깝다. 완월동을 찾는 손님과 가게 종업원들은 골목시장을 찾는 손님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1990년대 후반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서 시장 방문객은 빠르게 줄었다. 주변에 대형마트들이 생겨나고 아파트 등 대형 건물이 세워진 것도 시장 분위기를 위축시켰다.

한창 호황이던 시절에 비하면 아직은 허전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상인들은 이제 희망을 얘기한다. 권 회장은 고갈비 특화 거리 조성 이후 평균 방문객이 20%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충무동골목시장 인근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장모 씨는 “솔직히 예전에는 환락가 방문객이 많이 찾던 시장이라 밤에는 가기가 꺼려졌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밝아져서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 충무동골목시장을 찾는 새로운 고객층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이다. 고갈비와 파전을 파는 ‘세명빈대떡’의 박외순 씨(57·여)는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왔다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들 역시 방문 후기를 블로그 등에 올린 걸 봤다”고 전했다. 충무동골목시장에서 파는 고갈비는 한 마리에 7000원, 파전은 5000원이다. 이곳 상인들은 “두 명이 2만 원 가지고 즐겁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지 않으냐”며 “이곳이 과거처럼 서민들이 애환을 털어놓고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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