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영]문자는 공감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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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김지영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지난주 쓸쓸한 소식이 들렸다. 계간 ‘작가세계’가 1년간 휴간에 들어가는 등 문예지들이 잇달아 재정난으로 발행을 중단했다. 민음사가 40년 가까이 펴내온 계간 ‘세계의문학’을 2년 전 접었을 정도니 문예지의 휴간 혹은 폐간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만 문예지 출신 문인들로선 ‘친정’이 없어진 셈이니 황망할 테다. ‘작가세계’의 경우 문단의 중추인 소설가 김경욱 김연수 씨, 시인 박상순 함기석 씨 등을 배출했다. ‘작가세계’로 등단한 시인이자 편집장을 지냈던 정은숙 마음산책출판사 대표도 “착잡하다”며 침울한 심경을 내비쳤다.

영화 ‘타짜’를 히트시킨 최동훈 감독이 출판사 모임에 왔을 때 “이번 계간지의 내용은 뭐냐”며 편집자에게 묻던 게 불과 10여 년 전이다. 위세가 약해지긴 했어도 문학과 문화의 스피커 역할을 놓지 않았던 문예지는 이제 분명 그 기능이 줄어들었다. 사실 검색어 순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시대에 한 계절에 한 번씩 내는 잡지란 어울리지 않는다. 1990년대 계간 ‘상상’의 편집을 맡았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는 “요즘 트렌드의 속도로 봐선 (문예지 발행 간격은) 격주간지 정도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짧아야 산다. 격주간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최근 문예지들의 간격은 짧아졌다. ‘세계의문학’ 후속인 ‘릿터’나 매호 7000부 완판을 기록하는 ‘악스트’ 등은 모두 격월간으로 나온다. 정기구독자는 1000∼1500여 명으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18만 부가 나간 ‘82년생 김지영’이나 요즘 젊은이들의 키워드가 된 ‘한국이 싫어서’ 모두 원고지 500장 안팎의 경장편 소설이다. 출퇴근길 이삼일이면 한 권을 너끈히 읽을 만한 분량이다. 지난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든 책 가운데 소설집이 2권이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원고지 70, 80장 분량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은 그간 대중 독자가 아닌 문학 전문 독자들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베스트셀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최근 나온 소설집들은, 작가의 이름값 비중이 컸다고는 해도 수주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을 만큼 일반 독자들의 호응이 만만치 않다. 짧은 이야기의 소구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분량만 짧아진 것일까. 문단 관계자들은 문학 혹은 문자가 이전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됐다는 데 입을 모은다. “요즘 독자들에겐 문학잡지나 넷플릭스나 같은 것”(서효인 ‘릿터’ 책임편집자)이라든지 “문자, 일러스트, 유튜브가 모두 동급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이라는 의견이 그렇다. 실제로 과거의 문학이 추구했던 가치는 예술성 혹은 계몽성이었다. 언어가 구축하는 지극한 예술 행위,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르치는 계몽적 메시지가 시와 소설이 지향했던 바다. 그랬던 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만인이 쓰는’ 시대가 되면서 문자가 ‘공감’의 수단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터넷의 웹툰이나 동영상에 함께하는 수많은 ‘짧은’ 댓글들 역시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공감의 표현이다.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에 올라오는 독자들의 문학 리뷰 역시 공감의 내용이 다수다. 평론처럼 무겁고 현학적이진 않지만 짧고도 솔직하다.

21세기에 글을 읽고 쓰는 독자들은 이렇게 문자의 역할 중 진공상태였던 공감을 찾아냈다. 두껍고 긴 호흡이었던 문예지가 얇고 밭게 바뀌고 원고지 1500∼2000장이었던 장편이 몸을 확 줄이는 변신 가운데에는, 디지털 시대 문자의 새로운 기능인 공감에 대한 발견이 깃들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김지영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kimjy@donga.com
#작가세계#민음사#문예지 휴간#최동훈#계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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