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동나무 책장과 트렁크… 묘하게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가구박물관서 열린 루이비통 ‘트렁크 전시회’ 가보니

11일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한국가구박물관의 사대부집 안방. 제주 화조도(花鳥圖) 병풍 앞에 펼친 한국의 평상 위에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멀티 컬러’ 트렁크들이 전시돼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1일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한국가구박물관의 사대부집 안방. 제주 화조도(花鳥圖) 병풍 앞에 펼친 한국의 평상 위에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멀티 컬러’ 트렁크들이 전시돼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1일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한국가구박물관. 마당을 따라 한옥에 들어서니 대청마루 한편에 의(衣)걸이장이 놓여 있었다. 내부에 막대를 달아 두루마기처럼 긴 옷을 걸쳐두게 했던 19세기 말 한국의 옷장이다.

그 옷장 바로 옆에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여행 트렁크가 세워져 있었다. 옷걸이가 안에 달려 주름 없이 옷을 보관할 수 있게 한 가방이다. 1854년 탄생한 루이비통이 트렁크 안에 옷걸이를 달기 시작한 게 역시 19세기 말인 1890년. 루이비통코리아 관계자는 “외형상 닮은 한국 의걸이장과 루이비통 트렁크는 대를 이어 물려 쓴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이 12∼16일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자사의 최우수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맞춤 제작 트렁크 전시회’에 동아일보가 미리 다녀왔다. 이 박물관은 저명한 정치인이었던 정일형 박사와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딸인 정미숙 관장(70)이 15년간 한옥 10채를 복원해 2011년 개관한 곳이다. 미국 CNN은 이곳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꼽기도 했다. 루이비통과 한국의 장인정신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곳을 골랐다는 게 루이비통 측의 설명이다.

루이비통 장인이 한자를 트렁크 위에 그리고 있다.
루이비통 장인이 한자를 트렁크 위에 그리고 있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와서 보고 감탄했다는 오동나무 책장은 여러 개의 책함을 쌓아올린 것이다. 그런데 루이비통 트렁크도 두어 개를 쌓으면 티 테이블로 쓸 수 있다. 또 내부에 수납 기능이 있는 트렁크는 한국의 뒤주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정통한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디자이너)은 “고급문화일수록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한국의 고가구와 루이비통은 이질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유목민 럭셔리’를 표방하는 루이비통은 여행을 자주 하는 고객이 제품을 가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열어 펼치면 책상으로 변신하는 트렁크, 일본 전통 종이접기 방식을 접목한 접이식 가죽 의자가 대표적이다. 꽃을 담는 트렁크, 시계와 향수 트렁크 등 가방 종류도 많다.

고객들은 점점 더 맞춤형 경험을 원하고 있다. 럭셔리 업계가 프라이빗 전시와 ‘나만의 제품’ 서비스를 늘리는 이유다.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 그룹 소유의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은 고객이 원하는 문구와 그림을 제품에 새기는 서비스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2014년 국내에서 시작한 루이비통의 맞춤 제작 서비스는 고객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던 수준에서 사군자와 서울타워 등 다양한 그림 서비스로 발전했다.

한국가구박물관 사랑채 고가구 위에 놓인 루이비통 체스판.
한국가구박물관 사랑채 고가구 위에 놓인 루이비통 체스판.
이번 전시는 동서양 명품 간 하모니가 돋보인다. 사대부집 안방엔 모란꽃 병풍을 두르고 반닫이 위에 루이비통 ‘트위스트’ 가방을 올렸다. 사랑채 평상에는 체스 트렁크를 두고 남자들의 ‘스타일 있는 놀이’를 제안했다. 루이비통 측은 “평소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이 ‘꿈의 가격은 매길 수 없다’며 강조하는 럭셔리 정신을 한국 고가구에서 느낀다”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한국가구박물관#루이비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