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재벌총수 불러 “정유라 키우고 말 사주라”한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1일 00시 00분


코멘트
 박근혜 대통령이 재작년 1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을 청와대로 불러 “정유연(정유라로 개명)처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을 정책적으로 잘 키워야 한다. 왜 자꾸 이런 선수 기를 죽이냐”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작년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했을 때는 “승마 유망주를 해외 전지훈련도 보내고 좋은 말도 사줘야 하는데 안 하네”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이 나라의 장차관과 1위 기업 총수에게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키워 주고, 말도 사주라’고 한 대목에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박 대통령이 최순실을 평생 믿고 의지했어도,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는 정유라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도 이건 아니다. 이렇게 국정 운영을 여염집 아줌마가 뒷담화하듯 했으니,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한 혐의로 탄핵심판을 받게 된 것 아닌가. 무엇보다 그 격(格)이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그제 탄핵심판에 나와 ‘대통령도 차명폰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제3자 이름으로 개통한 차명폰이나 명의를 알 수 없는 대포폰은 모두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다. 법정형이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인 심각한 범죄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정 전 비서관 등 박 대통령 측근들이 차명 또는 대포폰을 사용한 것도 충격인데, 대한민국 법치의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부터 현행법을 위반했다니 기막히다.

 정 전 비서관은 ‘도청 위험 때문에’ 차명폰을 썼다는데, 그럼 우리가 대통령까지 도청을 걱정해야 하는 ‘도청 공화국’에 사는가. 그렇지 않다면 흔히 범죄 도구로 쓰이는 차명·대포폰을 써야 할 정도의 음험한 밀담을 나누기 위해 사용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장차관과 재벌총수와 나눈 얘기가 속속 드러나면서 왜 차명폰을 써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풀려간다.
#박근혜#대통령#정유연#정유라#이재용#최순실#차명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