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지주사 체계 전환 공식화… 재계 “정기선 경영 후계자 육성 포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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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보틱스, 지주회사로 설립… 조선 해양 엔진外 5개 부문 분사
오너 영향력 높여 경영 안정 밑그림… 고용불안 우려한 노조 반발 넘어야
현대重 “승계, 아직 논할 단계 아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사 체계 전환을 공식화했다.

 궁극적으로는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65)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장남 정기선 전무(34)의 후계 작업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정 이사장은 2002년 현대중공업 고문을 끝으로 경영에서는 물러나 있다.

 현대중공업은 18일 오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린 증권신고서에서 현대중공업의 사업부문이던 현대로보틱스를 분사해 공정거래법상 사업 지주회사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엔진 사업 부문만 현대중공업에 남기고 현대일렉트릭(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글로벌서비스(서비스), 현대로보틱스(로봇), 현대그린에너지(그린에너지)를 각각의 독립 법인으로 쪼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회사 분사(分社) 계획을 발표한 직후부터 현대로보틱스가 지주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회사가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중공업은 그간 분사 계획에 대해 경영 효율화 차원이라고 설명해 왔다.

 재계에서는 지주사 전환으로 계열사 독립 경영과 오너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사주의 마법’으로 불리는 의결권 분할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지분 10.2%를 갖고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정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전무가 가진 현대중공업 지분은 현재 617주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은 자사주 13.4%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사주는 상법에 따라 의결권이 없다. 그런데 인적 분할을 하게 되면 지주회사가 자사주 비율만큼 신주를 배정받게 돼 의결권이 생긴다. 현대중공업 자사주가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로 이관돼 의결권이 생기면 주주 지배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현대로보틱스가 유상증자를 하고 인적 분할을 거치면서 정 이사장이 10.2%씩 가지게 되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현대로보틱스에 현물 출자하면 정 이사장은 지주사의 지분을 40%까지 늘릴 수 있다. 

 현대중공업의 현 구조에서 정 전무가 아버지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50%를 증여세로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에서 지분을 40%까지 올려놓으면 세금을 내기 위해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안정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경영 승계가 가시화하려면 분사 등으로 고용 불안을 우려하는 노조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를 의식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경영 승계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전무는 2013년 현대중공업에 부장으로 재입사한 뒤 3년여 만에 전무로 고속 승진했다. 지금은 선박해양영업부문 총괄부문장으로 해외 수주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정기선#현대중공업#현대로보틱스#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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