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생명 가르치는 ‘물벼룩 할아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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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길 서울교육청 자문위원장
“생태체험 통해 생명 존엄성 교육” 학교에 나비알-메뚜기 등 무료공급

소년은 경북 군위군 산골 마을의 한 초가에 살았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밝히는 집이었다. 마당에 나비가 날고 논에서는 개구리가 울었다. 산과 들과 개울은 소년에게 놀이터였다. 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손으로 도랑에서 가재를 한 주전자씩 잡아 삶아 먹었다. 메뚜기 개구리는 구워 먹었다. 입가심으로 진달래 꽃잎과 찔레순을 씹었다.

소년은 풀과 벌레, 야생동물과 함께 커가며 어른이 됐고 서울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서울 아이들은 자연을 교과서로 배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교사가 된 소년은 제자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논에서 개구리알을 구해 전교생에게 나눠줬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 얘기를 하며 떠들고, 일기장에 개구리 그림을 그렸다. ‘시골 소년’이 서울 소년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서울과학전시관 생태학습관을 운영하고 있는 홍순길 서울시교육청 ‘아름다운 학교 생태정원 가꾸기’ 자문위원장(67·사진)의 이야기다.

홍 위원장은 1971년 서울교대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2011년 정년퇴임까지 생태 교육에 힘썼다. 도시 아이들이 책으로만 보던 동식물을 직접 만져보며 밝아지는 모습을 보고 생태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4년 효제초교 교장 시절에는 학교 안에 10년 동안 방치되던 야외 수영장을 개조해 생태 연못을 만들었다. 여기서 송사리를 연간 5만 마리 이상 생산해 학습 도구로 활용했다. 40여 년간 생태 교육에 힘쓴 공로로 교육부장관상 등 19개의 상을 받고, 지난해 교육청 학교 생태정원 가꾸기 자문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아이들은 생태 체험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배운다”며 “생태 교육은 곧 인성 교육”이라고 말했다.

생태 교육에 대한 홍 위원장의 열정은 퇴임 이후 더 뜨거워졌다. 그는 2013년부터 생태학습관을 운영하며 서울 시내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생들에게 생태 교육을 위한 생물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이 교과서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를 위해 나비 알을 서울 430여 개 학교에 무료로 나눠준다. 홍 위원장은 거북이 똥에서 나오는 플랑크톤을 물벼룩 먹이로 주며 27년째 물벼룩을 기른다. 물벼룩은 강장동물 히드라나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그는 “물벼룩으로 아이들에게 먹이사슬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생태학습관에서는 도시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강장동물 히드라부터 방아깨비, 벼·섬서구메뚜기, 베짱이, 여치, 사마귀, 암끝검은표범·호랑·노랑나비, 거북이, 자라까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

‘물벼룩 할아버지’ 홍 위원장은 올해 낙성대 공원 인근의 과학전시관 부지 6600㎡를 활용해 메뚜기를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부지에 메뚜기 먹이인 강아지풀과 피 씨앗을 뿌려 놓았고, 9월엔 방아깨비 메뚜기 300쌍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내년이면 곤충이 3만 마리로 늘어나 학습 도구로 공급할 수 있다. 그는 “행복한 시간을 얼마나 비축하느냐가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생태 놀이터에서 행복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물벼룩 할아버지#홍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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