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6·25와 鐵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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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끊어지고 뒤틀린 철교. 보따리를 하나둘씩 짊어진 채 철교 아치와 상판(上板)을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 더러는 철교 아래 강으로 뚝뚝 떨어지고, 더러는 철제 빔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AP통신의 종군기자 맥스 데스퍼가 찍은 사진 ‘대동강철교를 건너는 피란민’의 모습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초 평양의 대동강 풍경은 이렇게 처절했다.

6·25전쟁 하면 떠오르는 시각 이미지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 사진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철조망에 걸려 있는 빨간 글씨의 지뢰 표지판, 소총 위에 걸어놓은 녹슨 철모를 떠올릴 것이다.

1950년 12월 31일 오후 10시경, 경기 파주 장단역. 개성 방향에서 북한의 화물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순간, 기관차 위로 포탄이 쏟아졌다. 기관사 한준기 씨.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다 중공군에게 막혀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북한 기관차로 갈아타고 장단역에 들어오던 중이었다. 장단역에 들어서자마자 북한군으로 오해를 받아 국군의 폭격을 받은 것이다.

기관차는 그대로 멈췄다. 장단역의 시간도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66년. 현재 남아있는 육중한 기관차 화통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 그 자체다. 표면을 가득 채운 검붉은 녹, 부서진 바퀴와 무수한 총탄 자국, 화통 위에서 자라는 단풍나무 한 그루…. 비무장지대(DMZ)에서 붉게 녹슨 채 방치됐던 이 기관차 화차는 2년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거친 뒤 2009년 6월 파주 임진강 자유의 다리 남단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이 같은 열차는 또 있다.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월정리역. 1950년 6월 폭격을 맞고 멈춰 선 열차의 잔해가 남아 있다. 종잇장처럼 무참하게 구겨진 철제 객실 차량. 앙상한 잔해 틈새로 돌이 뒹굴고 거기 작은 나무들이 힘겹게 자라고 있다. 바로 옆 간판에 써놓은 문구가 가슴을 파고든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월정리(月井里)는 ‘달빛 비치는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 이보다 더 시정(詩情) 넘치는 지명이 어디 있을까. 경원선의 간이역 월정리역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이 막힌 지 오래고, 월정리역은 현재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있다. 최근엔 경원선 복원이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월정리역 인근 철원역도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빈터만 남아 있다. 50m 정도의 철로와 침목이 놓여 있고 플랫폼에 사용했던 콘크리트 조각 몇 개, 녹슨 신호기가 전부다. 저 철마는 언제쯤 금강산을 향해 달릴 수 있을까.

그날을 위해 우리는 철마를 잘 보존해야 한다. 장단역 기관차 화통은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처리를 거쳤다. 하지만 월정리역 열차의 잔해는 그렇지 못하다. 국가나 지방의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았다.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보존 관리가 필요하다.

이 두 열차는 전쟁의 상흔임에도 마치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역설이다. 이것을 우리가 더더욱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열차들을 기억해야 한다. ‘대동강 철교를 지나는 피란민’ 사진은 세월이 흐르며 6·25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전쟁의 처절함과 함께 자유를 향한 갈망을 되새긴다. 두 열차도 마찬가지다. 두 열차는 소중한 문화재가 되어간다. 제대로 기억하고 제대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일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
#6·25전쟁#열차#철교#피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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