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일호부총리, ‘환율관찰대상국’ 된 게 자화자찬할 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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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29일 한국 독일 중국 일본 대만을 ‘환율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했다.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에 들어간 나라는 없었지만 ‘외환시장판 슈퍼 301조’인 개정 무역촉진진흥법(BHC수정안)에 따라 처음 작성된 종합적 심층적 리스트로 결국 관찰대상국 중 조작국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치는 장기 경기침체에 빠진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예사롭지 않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갑자기 떨어뜨렸을 때 “경기 대응책으로 이해한다”고 했고 일본의 노골적 엔저도 관대하게 용인했다. 그런데 환율에 개입한 정도가 두드러진 두 나라와 한국을 똑같은 관찰대상에 올린 이유를 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미 무역흑자 폭이 크다지만 서비스 부문의 적자로 상쇄되고 사실상 미국인 소유인 초국적 기업의 수익까지 포함하면 미국의 조치는 지나치다. 미국은 최근 9개월간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260억 달러 선으로 특정하면서 “무질서한 금융시장 환경에 처했을 때만 시장 개입을 하라”는 경고성 지침까지 제시했다.

심리적 요인으로 쉽게 출렁이는 외환시장의 급격한 동요부터 당장 걱정된다. 올 초 12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까지 내려온 것은 고환율 정책을 쓰지 말라는 미국의 경고에 시장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향후 원-달러 환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환율이 급변동할 경우 외환 당국이 취했던 원-달러 환율 미세 조정 조치도 제한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16개월 연속 사상 최장 기간 뒷걸음질 치고 있는 수출 실적도 나아질 전망이 암울하다. ‘한국판 양적완화’도 통화가치가 낮아지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환율에 개입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세심하고 치밀하게 미국 경제 당국을 설득하는 정교한 경제외교가 절실하다.

재정정책으로 경기 부양 효과를 못 본 선진국들이 통화정책에 다걸기 하면서 세계는 환율전쟁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다. 영국 캐나다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시사했고 싱가포르도 통화 완화책을 단행하면서 아시아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일본 정부가 “개의치 않겠다”고 반격해 미일 통화 갈등도 증폭될 우려가 높다. 유럽과 아시아가 환율 문제로 격돌하면서 세계가 보호무역 조치의 악순환으로 빠져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서면 세계 경제가 얼어붙는 경제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기초 체력이 바닥 난 한국 경제는 지금 진퇴양난에 처했다. 이런데도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제단체장들과 골프장에서 “걱정할 것 없다”는 말만 되뇌고 기획재정부는 ‘Monitoring’을 ‘감시’가 아닌 ‘관찰’로 해석한다. 더욱이 “환율조작국에서 빠진 건 부총리가 미국을 설득한 경제외교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하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미국 재무부#환율#한국 경제#유일호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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