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고르바초프의 거위 조각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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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집무실에 거위 조각상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1983년 조기 경보 레이더가 거위 떼를 미국의 핵미사일로 오인해 대응 경보를 내렸던 일촉즉발의 위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1979년 7월 콜로라도 주 샤이엔 기지의 북미방공사령부(이후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로 명칭 변경)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미국이 소련의 미사일을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핵무기로 상대방을 절멸시킨다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상호확증파괴(MAD) 핵전략에 거부감을 갖고 핵무기 폐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1981년 3월 워싱턴 힐턴호텔 앞에서 존 힝클리의 총격 암살 시도에서 살아난 뒤에 이런 결심을 굳혔다고 회고록에 썼다.

냉전시대의 맞수인 이들은 누구보다도 핵전쟁의 위험을 잘 알고 있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마무리하고 핵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핵무기 폐기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레이건의 후임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냉전 해체 과정에서 미국의 지상 및 해상 핵무기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고르바초프도 뒤이어 지상발사 전술 핵무기와 선박 잠수함의 핵무기를 제거했다.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전술핵을 철수한 것도 이런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현인들의 이상과 기대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핵탄두의 수는 당시의 3분의 2 정도로 줄었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은 ‘핵 없는 세상’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 개발 야욕이 가세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핵 위기는 오히려 냉전 때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다.

핵무기 개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두고 미국의 총기 규제와 유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결국 나쁜 놈들만 무장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안보리 제재가 나오고 각국의 독자적인 제재가 강화되겠지만 남북 핵 불균형 속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하게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핵무장론 거론의 배경이 된 셈이다.

하지만 국제무대를 향해 우리가 핵무장을 요구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한국의 핵무장론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지만 지나치면 관심을 끌 수도 있다. 2004년에 불거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0.2g 분리실험을 두고도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에 직면했던 과거도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남북이 핵무장으로 맞서는 상황이 ‘공포의 균형’을 만들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조지 테닛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냉전의 가장 어두운 시절에도 우리는 소련인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의존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집무실에 거위 조각상을 설치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야 정부가 이런 여론이 있으니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호응을 촉구하고,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라고 중국을 압박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뿐이다. 정부도 그동안 국내의 핵무장 여론을 외교적으로 충분히 활용했을 터이니 이젠 분노 해소용 핵무장 담론을 즐기는 데서 벗어나 제대로 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서 핵우산의 신뢰를 높일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게 목표이지, 잠깐 아프게 만드는 게 정부의 전략적 목표여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그로바초프#미국#북한#로널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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