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로봇, 한국의 영웅 또 언제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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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태권V’ 박물관, ‘브이센터’ 개관으로 본 현주소
1970년대 로보트태권V 열광 불구, 40년 가까이 후사없이 추억팔이 그쳐
모험정신으로 캐릭터 개발 도전해야

서울 강동구 아리수로 ‘브이센터’ 전경. 전시관 앞에 설치된 15m 크기의 태권V 모형은 30, 40대에게 소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브이센터 제공
서울 강동구 아리수로 ‘브이센터’ 전경. 전시관 앞에 설치된 15m 크기의 태권V 모형은 30, 40대에게 소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브이센터 제공
《 10일 오후 멀리 15m 크기의 태권V가 보였다. 아들보다 내 가슴이 더 쿵쾅거렸다. 서울 강동구 아리수로에 위치한 ‘브이센터(V-Center)’. 지난달 15일 연 ‘로보트 태권V’ 체험형 박물관이다. 태권V 모형, 4차원(4D) 영상을 구경한 후 아이에게 말했다. “태권V는 아빠 어릴 적 영웅이었단다. 멋지지!” 아들도 흠뻑 빠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하던 아이가 외친다. “아빠, 태권V가 ‘짝퉁’이래요. 검색해 보니 일본 로봇 ‘마징가Z’와 너무 비슷해요.” 할 말이 없었다. 태권V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는 순간….(40대 아빠의 일기 중) 》

○ 응답하라! 1970, 80년대 한국 슈퍼로봇


시간을 40여 년 전으로 되돌리자. 1976년 7월 개봉한 극장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는 당시 서울에서만 18만 관객이 들며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 로봇물의 화려한 시작이었다. 이후 1980년대 내내 ‘로보트 킹’ ‘슈퍼 타이탄’ ‘스페이스 간담 V’ 등 한국로봇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이 쏟아졌다.

현재 30, 40대 아저씨가 된 당시 ‘열혈 소년’들은 이들에 열광했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 서울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강철 로봇들을 보면서 오줌을 찔끔 쌀 만큼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로봇 조종사가 아니라 아예 로봇 자체가 되고 싶어 바지 위에 팬티를 입었고 장화를 신었다. 권투 글러브를 끼고 팔을 휘둘러 글러브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식의 ‘로켓 주먹 퍼포먼스’를 재현하다 창문을 깨 회초리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들이 성인이 된 2000년대, 인터넷을 통해 영웅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내 로봇 캐릭터의 대다수가 일본 로봇을 베꼈다는 사실이 차례로 확인됐다.(그림 참조)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와 ‘태권V’, 일본 애니메이션 ‘전투메카 자붕글’과 ‘슈퍼태권V’, 일본 만화 ‘자이언트 로보’에 등장한 로봇 GR2와 한국 만화 ‘로보트 킹’(왼쪽부터). 1970, 80년대 한국 로봇물은 일본 로봇 형태를 그대로 베낀 듯 디자인이 유사했다. 인터넷 캡처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와 ‘태권V’, 일본 애니메이션 ‘전투메카 자붕글’과 ‘슈퍼태권V’, 일본 만화 ‘자이언트 로보’에 등장한 로봇 GR2와 한국 만화 ‘로보트 킹’(왼쪽부터). 1970, 80년대 한국 로봇물은 일본 로봇 형태를 그대로 베낀 듯 디자인이 유사했다. 인터넷 캡처
○ 얼룩진 한국 로봇 영웅,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인들이 거대 로봇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할리우드 로봇 영화 ‘퍼시픽 림’은 본토에서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국내에서는 500만 명이나 봤다.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도 국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태권V 관련 프로젝트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03년 태권V 필름이 디지털로 복원돼 상영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2006년, 2009년 ‘리부트’ 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재까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송락현 씨는 “미국 트랜스포머, 일본 건담 등은 재생산되며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얻었지만 태권V는 ‘추억팔이’에 그쳤다”고 말했다. 태권V를 재창조할 시기가 있었지만 ‘표절 콘텐츠’라는 사람들이 많아 타이밍을 놓쳤다는 설명이다.

이후 한국 슈퍼 로봇의 맥은 끊어진 상태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한국 로봇물이 표절한 부분이 있지만 한 시대, 한 세대와 함께한 동시대성과 공감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슈퍼 로봇 열전’의 저자인 승채린 씨도 “옛날에는 제작 비용이 부족해 헌 필름을 재활용하고 밤새우며 마감을 맞추기 일쑤였다”며 “표절의 면죄부가 될 순 없지만 당시 제작자들은 불모지에서 무언가 만들려 했던 모험가였다”고 했다.

그래, 맞다. 1970, 80년대 한국 로봇 영웅 대다수는 표절의 산물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태권V는 아빠 어린 시절 기쁨과 용기를 준 커다란 존재였단다. 인격적으로 완벽하지도,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지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 시절 누군가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태권v#태권브이#브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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